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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02. 2019

제 생각에는, 문제없을 글만 쓰는 게 문제 같아요.

아무도 보지 못할 글을 쓰려는 이유

  뭐라도 쓰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콘텐츠를 쌓고, 인스타에 책 후기를 올리고, 가끔 브런치에 에세이도 남기고.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과 제가 지은 필명을 오가며 짧거나 긴 글을 쓰지만 그중 어디에도 혼자 쓰고 혼자 읽는 글이 없습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닌 사람이 되고 싶은데 이대로면 보이는 것 말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여러 번 일기를 써 보려 했습니다. 짧으면 하루 이틀, 길게는 이삼 주만에 귀찮아지고 잊어먹게 되고 하더라고요. 꾸준히 하는 건 출근 말고 아무것도 없는 제가 일기 쓰는 습관을 가지는 건 무리였나 봐요. 어디에 뭐라도 쏟아내고 싶을 땐 펜을 들지만 그렇게 쓰는 글은 죄다 수필이 되어 어딘가에 업로드됩니다. 이왕 쓰는 거 조금만 손보면 다른 사람과 나눌 이야기가 된다는 이유로요.

  쓰다 버리고, 다 쓰면 올리고. 이젠 어딘가 공개된 곳에 올리는 것까지가 글의 완성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마케터가 되고나서부터인 것 같아요. 예전엔 일기가 아니라도 저 혼자 쌓는 글들이 있었거든요. 그치만 조회수며 클릭율 같은 숫자가 전부인 디지털 마케팅 세계에서는 보이는 것만이 제 포트폴리오로 남습니다. 아무리 잘 쓴 글이라도 공개되지 않았다면 성과를 측정할 수 없어요. 그러다 보니 아무도 보지 않는 건 아무에게도 의미가 없는 것 같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볼지도 모를 글을 쓰다 보면 누가 봐도 문제없을 글만 쓰려 애쓰게 됩니다. 문장 앞에 ‘내 생각일 뿐이지만’, 끝에는 ‘~인 것 같다’는 말이 자꾸 덧붙습니다. 제가 쓰는 글인데 당연히 제 생각이 들어가죠. 어떻게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하며 사나요. 부먹보다 찍먹, 피자보다 치킨, 자기계발서보다 소설. 누가 비난할 수 없는 제 취향입니다. 반사회적인 글이 아니고서야 제 취향이니만큼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소재로 쓰길 망설이게 됩니다. 제 생각일 뿐이지만 이런 식으로 쓴 글은 문장이 무거워지고 지저분해지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검열하는 동안 자꾸 우유부단해지는 것 같아요. 글도 제 성격도요.


  이젠 어디에도 올리지 않을 글을 쓸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아니, 쓸 때입니다. 누구도 보지 않는 글을 쓸 때만큼은 필요 없는 배려를 하지 않게 되겠죠. 희석되지 않은 제 생각을 잡아둘 노트를 다시 만들었습니다. 읽는 사람에게 친절한 글보다 쓰는 저에게 집중한 글을 적금 들듯 쌓아두려고요. 일기든 수필이든 소설이든 편하게 채워 두고 잘 숙성시켜 뒀다 필요할 때 꺼내 쓰면 쏠쏠하지 않겠어요.

  대학 다닐 때 동아리에서 연재하던 웹진에 글을 쓴 적 있습니다. 한 달에 두세 편씩 꼬박꼬박 시랑 소설 이야기를 몇 년 했는데 참 재미있었어요. 검색 노출 키워드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아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이었지만 그때 글은 지금 읽어도 재밌습니다. 저만 봐도 제가 재밌으면 충분했던 그런 글, 지금도 쓸 수 있을까요?

  결국은 더 많이 써야겠다는 이야기입니다.


* 뉴스레터 [여름의 솜사탕] 8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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