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어린이의 딱 하루 산타 행세
가난은 모두에게 해롭습니다. 특히 아이에게는 외롭습니다. 일요일 아닌 빨간 날에는 더 그렇습니다. 저는 남부럽지 않게 가난한 어린이었고, 나에게만 주어지지 않는 게 있다는 걸 너무 빨리 알게 된 철부지였습니다. 어디에 사람이 많네, 가족끼리 놀러를 왔네 북적대는 날이면 일부러 테레비랑 라디오를 듣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할 일 없이 누워 있는 외로운 어린이가 저뿐인 것 같잖아요.
그런데 크리스마스는 좀 달랐습니다. 요즘에야 불경기 탓인지 나이를 먹은 탓인지 크리스마스 트리를 봐도 인사치레 했구만 생각하는데, 20년 전만 해도 12월에는 어디서나 캐롤이 들려오고 마음이 설레는 게 당연했어요. 아, 산타를 믿은 적은 없지만 공부 잘하고 착한 어린이었으니 산타를 가장한 누군가 저에게 뭐라도 주지 않을까, 오백 원짜리 크레용 모양 초콜릿 같은 것도 좋은데. 뭐 그런 기대도 살짝 있었고요. 진짜 아주 작은 거라도 괜찮으니까 뭐라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 '누군가'가 크리스마스 시즌인 걸 알도록 일부러 집에서 캐롤을 듣기도 했습니다. 어디서 주워왔는지 모를 호동이와 포동이의 크리스마스 캐롤 리믹스 테이프를 늘어질 때까지 들었습니다. '흰눈사이로~ 썰매를타고~ 달릴까~ 말~까~, 달릴까~ 말~ 까~'. 뜻도 모를 펠리즈나비다 같은 것도 들리는 대로 따라 부르고 했는데 역시나. 밖에서 빨래를 하던 엄마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나 봅니다.
초등학생이 되고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유치원 때 받았던 엄청 멋진 문구세트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요. 케로피라는 캐릭터 피규어가 있는, 가위나 칼 자 지우개 같은 게 꽂혀 빙글빙글 돌아가는 트리처럼 생긴 문구세트였어요. 그거 참 예뻤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던 건 엄마아빠가 빨간 날을 챙기는 데 무뎌져서가 아니고 가세가 본격적으로 기울기 시작해서입니다. 어쩔 수 없죠 뭐. 그래도 온 세상이 즐거운 날을 나만 아무것도 아닌 날로 보내는 게 싫어 친구들 따라 교회도 한 번 가보았는데,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같은 노래를 부르자니 석가탄신일에 뵈었던 부처님을 배신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부처님 오해는 마시고, 여긴 그냥 잠깐 놀러왔는데 먹을 것도 주는 곳에서 노래를 안 부를 순 없잖아요? 속으로 사과도 했던 착한 어린이였던 저.
죄지은 건 없지만 가난은 연대책임이라 제 동생도 부모님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본 적 없습니다. 너나 나나 인생 참 구질구질하다며 맥주라도 한 캔 까기엔 제가 많이 어리고 또 착했습니다. 그나마 두 시간에 한 대 있는 마을버스 타고 시내 구경이라도 할 수 있던 제가 보기에 동생은 크리스마스를 아무 날도 아닌 것처럼 보내는 유일한 어린이었습니다. 그때 무슨 바람이 불었던 건진 모르겠습니다. 열두 살인가 열세 살 때쯤 친구들이랑 시내에 놀러갔다가 본 크리스마스 카드를 세 장이나 사 온 겁니다. 팬시점에서 몇천 원 주고 뭔가를 사서 포장해오고는 카드와 함께 크리스마스 이브 한밤중에 동생 머리맡에 두었는데요. 용의주도하게 산타 도장 같은 걸 발명했다며 캐릭터를 그려넣기도 했습니다. 이게 진짜 산타라는 증거라면서요. 카드를 세 장 산 건 내년과 내후년까지 일관성 있는 이벤트를 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아요.
제 기억력이 나빴던 건지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 건지 동생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한 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지금에야 평범한 남매답게 일년에 한두 번도 연락하지 않는 동생은 분명 까먹었을 기억입니다. 그 별거 아닌 10여 년 전 기억이 가끔 묵직하게 떠오릅니다. 산타 선물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도 다른 사람을 위해 산타 도장을 만들어낼 수도 있구나, 내가 그런 사람이었구나 생각하면서요.
올해는 외로운 어린이가 없는 크리스마스면 좋겠습니다. 엄마든 아빠든 누나든, 누구라도 그를 위해 하루는 산타가 되어줄 수 있는 크리스마스면 좋겠습니다.
* 뉴스레터 [여름의 솜사탕] 20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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