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를 배운 적 있습니다. 이제는 C코드도 잡지 못하지만.
콜드플레이의 Up&Up, 뱀파이어 위켄드의 Harmony Hall, 오아시스의 Live forever. 락 좀 듣는 분이라면 반박할 수 없을 명곡들입니다. 멋진 기타 리프가 돋보이지요. 어쩌면 제가 이 곡들을 좋아하는 이유부터가 찰진 기타 리프의 존재 때문일지 모릅니다. 작년 이맘때쯤 이 공통점을 눈치채자 갑자기 기타를 배우고 싶어졌습니다.
"기타를 배워야겠다. 2대1 레슨도 된대. 혼자 가기 좀 그런데 같이 배울 생각 없음?"
"오? 재밌겠네."
마침 인스타로 덕질 중이던 인디밴드의 기타리스트가 개인 과외를 시작한다는 글을 올렸더라고요. 월급날도 얼마 지나지 않던 차, 지름에 매우 적절한 타이밍이었습니다. 그 길로 1달 수업비랑 10만원 조금 넘는 일렉기타를 지르고 최측근과 쫄래쫄래 수업 들으러 다녔습니다. 셋이 '기타등등' 이라는 단톡방도 만들었고요. 선생님은 기타 실력만큼 훌륭한 가르침을 전수하셨습니다. 코드 잡는 방법부터 기초 화성학까지, 두 달 정도 배우니 학교종이 땡땡땡 정도는 코드로 연주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피곤하긴 한데 재밌다. 수업 듣길 잘했다 그지?"
"그러게. 넌 완전 성덕 됐네."
하지만 성공한 덕후의 기쁨은 잠시, 낭낭했던 제 팬심이 증발해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선생님네 밴드에서 새 앨범을 냈는데, 냈는데... 아.... 그건 정말 이만한 커리어를 가진 밴드에서 나올 수가 없는 괴작이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재생목록에서 지워버리고 싶었지만 성덕 된 자로서 꾹 참고 근성으로 정주행했는데요, 저는 지금도 그 결정을 후회합니다.
"...들었어?"
"응..."
몰랐다면 좋았을 텐데. 이전 수업 때 "선생님 새 앨범 기대할게요!"라며 오두방정을 다 떨어 놓았는데. 그다음 수업에서는 선생님 눈도 못 마주치겠더라고요. 선생님 이번 앨범 잘 들었다는 빈말을 했던가 안 했던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순간을 돌아보면 저와 최측근의 마음, 기타등등의 즐거움이 한순간 사라지고 남은 공허만 떠오릅니다.
"기타 맡아 줘서 고마워. 덕분에 방이 넓어졌다."
"그러게. 드디어 치웠다."
그때 그 수업을 더 오래 들었다면 어땠을까요. 1년동안 제 방에서 먼지만 쌓인 기타는 멋진 소리를 내고 있었을까요. 웃으면서 "선생님 이번 앨범도 좋았지만 다음 앨범이 더 좋을 것 같아요!" 말 건넬 수 있었을까요. 씁쓸하게 다음 수업을 기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다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병원을 옮기네 마네 하면서 수업을 중지했고, 수술을 한 번 하네 두 번 하네 난리통 속에 기타등등 카톡방은 고요하게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다시 치고 싶어지면 얘기해. 가져다줄게."
"응. 근데 그런 날이 올까?"
지난 1년 동안 제 다리엔 지워지지 않을 흉터가 남았고 최측근과 저는 몇 번의 락 페스티벌과 콘서트를 함께 다녔습니다. 저는 여전히 기타 리프가 멋진 곡을 좋아하지만 이제 입으로 띠용띠요옹 따라하는 정도면 족합니다. C코드 잡는 법도 잊어버린 제 손을 떠난 10만 원짜리 기타는 제 자취방보다 좀 더 넓은 최측근네 집 한켠에서 짐짝 신세를 이어가겠죠. 기타를 배워야겠다, 작년 겨울 잠깐 머물다 사라진 그 마음은 어디로 가 버린 걸까요. 왜 어떤 마음은 오래 남고 어떤 마음은 흔적조차 남지 않는 걸까요. 사라진 마음이 돌아오는 날이 올까요.
이번 솜사탕을 쓰면서 오랜만에 그 밴드를 찾아보았습니다. 예전 곡이 너무 좋았던 거지, 언제나 좋은 곡만 낼 수는 없지, 한 발짝 멀어져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들의 최신곡을 들어보았습니다.
네... 다섯 발짝 더 멀어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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