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 Sep 24. 2020

변변찮은 이삿짐이라도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마음가짐

중고거래 앱에 올라온 매물, 그 너머 사연들을 취재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앞으로 3년은 승무원 공채가 없을 거라는 소문에 오랜 꿈을 접고 <항공승무원 길라잡이>를 판매한 사람, 종로에서 가장 큰 미용실을 폐업하고 머리 감을 때 쓰던 온수기를 뜯어 올린 사람, 옷가게를 정리하고 알록달록 놀러 가서 입기 좋은 예쁜 옷을 내놓은 사람…

올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이럴 거면 2020년은 없는 셈 치고 사라져버리면 좋겠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보고 들었습니다. 오죽하면 그러겠어요. 여행자들은 싸둔 가방을 맥없이 풀었습니다. 1학년들은 새내기 생활을 즐기지 못했습니다. 직장과 사업장을 잃은 사람이 많고, 어떤 이들은 황망하게 가족과 친구를 잃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우리 모두 크고 작은 고통과 매일 마주합니다.

애석하게도 올해가 없었던 것마냥 시침 뗄 수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을 집 안에 가둔, 모든 사람의 마음을 걸어잠그게 만든 지난 몇 달이었지만요. 벌써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것처럼, 느리게라도 꾸준히 이다음 세상은 올 것입니다. 이제 조금씩 여기를 떠날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그곳에 가져갈 변변찮은 기억과 마음의 짐을 차곡차곡 쌓고 뽁뽁이로 친친 싸맵니다.

진심을 담기 시작한 '건강 조심하세요' 인사.

예전보다 덜 기다려지는 주말.

심심함을 넘어선 무기력함을 체험.

일 년에 두 번 보는 첫째더러 추석 한 번은 내려오지 말라고 당부하는 엄마의 마음 같은 것들.

잔뜩 구해 둔 박스가 무색할 만큼 별것 없는 세간이 허탈하지만, 좀 더 두고보려고요. 이사는 아직 한참 남았고 챙기지 못한 귀중품이 어디 굴러다니고 있을 겁니다.

아까 항공승무원 꿈을 포기했다는 분은 차마 팔지 못한 같은 책이 있대요. 나중에 상황을 보고 지원해볼 거라고요. 미용사분은 다른 가게를 차릴 계획이고, 옷가게 사장님은 혹시라도 다시 쓸 수도 있다며 가게 이름을 공개하지 않으셨습니다. 감히 힘내라는 말을 건넬 순 없지만, 그분들이 짐을 싸면서 생각지 못한 보물을 발견하길, 우리가 살아갈 이다음 세상이 좀 더 따뜻하고 건강한 곳이길 바라봅니다.

+ 혹시 언급한 기사가 궁금하다면 여기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중고거래 플랫폼 홍보용 기사인 것 같기도 한데... 기사의 목적이야 어찌 되었든 그 사연들은 거짓이 아닐 것 같아요.


* 뉴스레터 [여름의 솜사탕]​ #58에 실린 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