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눈을 물려주신 조상님께 올리는 글
광화문 광장에 가본 적 있으신가요?
해 진 후 광장 끄트머리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차 헤드라이트며 널찍이 길게 늘어선 건물들 불빛을 보면, 와, 여기가 사이버펑크의 수도 서울이구나 싶고 그렇습니다. 그 멋진 야경을 다르게 즐길 저만의 기술도 있지요. 안경을 벗으면 그 많고 작은 빛들이 환한 달처럼 크고 동그래져 장관을 만들어냅니다.
요즘 세상에 시력 좀 나쁜 게 무슨 대수겠냐만 제 눈은 정도를 지나칩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맨 앞자리에서도 칠판 글씨를 못 읽었어요. 근시가 아주 심하고 난시도 제법 있어서 안경으로는 교정시력도 0.7 정도밖에 나오지 않고요. 난시를 잡아 주는 하드렌즈를 껴야 정상 시력이 되는데, 몇 년 전 렌즈 맞추러 간 안과에서 비로소 제 시력이 나쁜 이유를 알았어요. 이거 유전이래요.
"눈이 엄청 커서 시력이 안 나오는 거에요."
"읭? 보시다시피 제 눈이 그렇게 크진 않은데요...?"
"아, 정확하게는 안구가 큰 거죠. 안구가 커서 초점이 제대로 안 맞으니 근시가 심한 거고요. 집에 눈 나쁜 사람 더 없어요?"
"이상하다, 저희 할아버지대까지 안경 끼는 분이 안 계셨어요."
"그럼 아마 더 먼 조상님 중에 계신가 보다."
눈이 크면 좋았을 걸 쓸데없이 안구가 크다니, 뭐 그런 실없는 생각을 잠깐 하다가, 언젠가부터는 이 눈을 물려주신 조상님을 상상하게 됩니다. 안경이나 렌즈가 없는 시대였다면 심각한 저시력으로 장애 판정을 받았을 텐데요. 우리나라에 안경이 처음 들어온 건 16세기 말 정도, 20세기 되어서야 안경 가격이 낮아지고 보편화되었다니 그 조상님은 색깔 구분이나 겨우 하는 시력으로 한평생 살아가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앞을 제대로 못 보는 악조건 속에서도 그분은 당차게 그리고 열심히 삶을 일구셨을 겁니다. 가정을 꾸리고 자식들을 낳으셨으니까요. 그 자식들도 그 근성을 물려받아 자식들을 낳았고, 그 자식들이 또 자식들을 낳았고...
이제는 어딘가의 흙이나 바람이 되었을 그분께 큰 눈 유전자의 직계후손으로서 감사와 존경을 전합니다. 당신의 나쁜 시력을 물려받은 건 애석한 일이지만, 거의 보이지 않는 눈으로도 멋지게 삶을 이어간 근면이나 긍지 같은 기질도 이 큰 눈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게 분명합니다.
저의 눈이 큰 조상님처럼, 여름님께도 갖은 불편을 이겨내며 유전자를 전해준 조상님들이 계셨겠지요. 가끔 무기력하고 삶에 의기소침해질 때 그 조상님들을 떠올려보셔도 좋겠습니다. 조상님들의 시야를 가렸을 고난, 그분들이 결국은 그걸 이겨내고 대대손손 후손을 낳았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감동하다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분들이 잘해 내신 것처럼 우리도 이 역경을 잘 헤쳐나갈 수 있겠지요?
* 뉴스레터 [여름의 솜사탕] #55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