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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Oct 20. 2020

뜨겁게 알게 된 것

추워질수록 자나깨나 불조심은 기본, 화상 조심은 필수입니다.

서늘한 바람 부는 가을입니다. 옷장 구석 맨투맨을 꺼내고 여름 내도록 신던 샌들은 신발장에 넣었습니다. 긴팔에 긴바지를 입었는데도 쌀쌀하다 싶은 게, 곧 지나면 겨울 되겠네요. 이제 또 1인 캠페인을 벌일 시기인가 봅니다.


추워질수록 자나깨나 불조심은 기본, 화상 조심은 필수입니다. 핫팩, 특히 붙이는 핫팩을 조심하시고 뜨거운 물주머니는 이부자리에 넣은 채 주무시면 안 돼요. 제가 그 물주머니 밤새 넣고 자다 저온화상 입은 사람입니다. 저온화상이 위험한 게, 앗 뜨거! 도 아니고 뜨뜻하다~ 싶은 수준의 온도에 방심하다 큰일이 나거든요. 정말 조심하셔야 합니다.


여기 제 큼지막한 흉터 보이시나요? 이거 3도 화상 수술 자국이에요. 화상으로 죽은 피부를 긁어내는 수술이었는데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정말. 수술 한 번으로 치료가 끝나는 것도 아니어서 두 달 가까이 일주일에 두세 번씩 상처 소독하고 붕대도 갈고 했는데요. 거동이 불편한데다 샤워도 맘 편히 못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이게 또 드레싱을 벗겨낼 때마다 피부가 찢어지는 고통이 있습니다. 병원 진료 시간을 맞춰야 하니까 직장인들은 일정 관리에도 고충이 있고요.


그리고 혹시나 주위에 화상 환자가 생긴다면 꼭, 꼭, 동네 피부과 말고 화상전문병원을 보내세요. 저는 심한 화상으로 피부가 죽어서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는데, 동네 피부과에서 그것도 모르고 3주 동안 드레싱만 해줬어요. 효과도 없는 치료를 일주일에 두 번씩, 갈 때마다 2만 원, 항생제만 잔뜩 먹고 돈이랑 시간이랑 다 날렸다니까요. 화상전문병원으로 옮기자마자 당장 수술 날짜부터 잡아야겠다는 얘길 듣고 '벼락을 맞으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는데, 진작 갔으면 흉이라도 덜 남았을지 몰라요.


에휴. 이게 다 작년 초 이야기입니다. 어찌 되었든 잘 나았으니 망정이지 시간, 돈, 건강에 피부까지 잃은 게 많은 시기였어요. 한 번에 10만 원씩 열 번 정도 레이저 치료를 받으면 흉터가 옅어질 수도 있댔는데 그냥 두었습니다. 비용도 비용이고 시간도 시간이지만, 나름대로 고통을 이겨낸 훈장 같아서요.


때문이랄지 덕분이랄지, 화상에 대한 약간의 지식도 생겼습니다. 피부과 오진으로 치료 적기를 놓치고 전문병원으로 옮긴 거라 걱정이 많았는데, 화상 환자들이 모여 있는 온라인 카페에 정보가 많더라고요. 그 말인즉 정말 많은 사람들이 화상으로 고통받고 있었어요. 특히 어린아이들. 잠깐 증기에 노출되거나 뜨거운 밥풀이 튀는 정도로도 심한 화상을 입을 수 있더라고요. 치료가 끝나도 흉터가 남으니 아이들 마음에 상처가 되겠다고 속상해하는 여러 부모님 마음이 랜선 너머로 절절하게 전해져 마음이 저렸습니다. 어디 랜선 너머뿐이겠어요, 병원 다니면서 예쁜 얼굴에 붕대를 감은 아이들을 많이 보았는걸요.


예전엔 TV나 신문에서 화재 사고 기사를 보면 막연히 ‘아이고, 이걸 어쩌나’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피해자가 어디에 몇 도 화상을 입었다는 이야기에 ‘아이고, 드레싱이 정말 아프겠다, 저 정도면 당분간 걷는 것도 씻는 것도 힘들겠는데, 병원 치료는 잘 받을 수 있을까, 이걸 어쩌나’ 싶어 발을 동동 구릅니다. 혹시라도 금전적인 부담 때문에 제대로 치료받을 엄두를 못 낸다면 어떡하죠. 모르는 사람의 고통이 이렇게 선명하게 그려지는 건 화상이 처음입니다.


제 인생 첫 정기후원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많이는 못 하고 매달 치킨 한 마리 값을 화상전문병원의 복지재단에 보내고 있어요. 재단 SNS에는 치료비를 지원받은 익명의 수혜자들이 보내는 감사 편지가 올라오곤 합니다. 많은 편지가 ‘나도 사회에 도움을 베풀며 살아가겠다’는 말로 마무리되는데, 그게 참 반갑고 좋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 했거든요.


병원 다니는 데 문제없도록 편의를 봐준 당시 직장, 진료 때마다 나잇값 못 하고 자지러지는 환자를 어르고 달래준 병원, 심지어는 의료보험 제도가 탄탄한 우리나라까지. 고마운 데가 참 많더라고요. 낫고 나면 무엇으로든 은혜를 갚아야지 싶었고, 얼마 안 되는 돈이나마 그 마음으로 부치고 있습니다. 동정이 아니라 공감에서 나오는 응원을 담아서요.


화상이 지나간 자리엔 벌건 화상 흉터, 그리고 참 뜨겁게 알게 된 마음이 남았습니다. 그래도 화상으로 아는 마음은 더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당신도, 누구라도요. 그러니 다시 한 번, 모두 조심합시다!



* 뉴스레터 [여름의 솜사탕] #61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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