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멀리 나가지 않는 이유

#0. 멀리 안나갑니다

by 여름

제품 출시가 일주일 남았다. 반경 2미터 내 팀원들이 기력을 잃고 있다. 여러 번 밀린 런칭일을 맞추느라 다들 무언가를 갈아넣었다. 이슈 없이 일정대로 진행되는 건 점심시간뿐이다. 핏줄 선 눈들을 마주하니 마음이 짠하다. 이제 진짜 코앞이네요, 마무리까지 조금만 더 챙겨보자고요, 다음 주만 버티고 다들 연차 씁시다.


그렇게 시작된 연차 이야기. 다들 어딘가로 떠나겠단다. 제주도, 여수, 코로나 잠잠해지면 외국엘 가고 싶다는 분도 있어 끄덕끄덕하는데 누군가 내 행선지를 물어본다. 글쎄요, 요즘 같아서야 어딜 갈 수가 없으니 생각도 안 해봤어요. 적당히 말을 넘겼지만 이 시국이 아니었어도 멀리 갈 생각은 안 했을 거다. 우리말 통하는 곳이면 모를까, 이 나라를 벗어나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다 퍽치기라도 당하면 어떡하냐고.


나에겐 인생 공포 세 가지가 있다.

1. 불은 라면

2. 벌레

3. 퍽치기


불은 라면은 아무래도 맛이 없다. 내가 끓인 라면이 맛없으면 자취 인생 10년 간 쌓아온 수행이 물거품 같아 절망스럽다. 그리고 벌레, 특히 집에서 나오는 벌레는 악몽 그 자체다. 그거 피한다고 가성비 낮고 좁은 신축에서 월세를 낭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퍽치기인데, 퍽치기는... 심호흡을 한 번 해야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


나는 불특정 다수와 함께 있는 대중교통, 길거리에서 웃지 않는다. 이벤트에 당첨됐다거나 티켓팅에 성공했다거나 그에 준하는 좋은 일이 있어도 티내지 않는다. 돈 얘기도 절대 안 한다. 연봉협상 성공했다거나, 돈이 좀 생겼다거나, 밖에서 누가 그런 얘기를 꺼낼라치면 잽싸게 입을 틀어막고 자리를 옮긴다. 그런 이야기 사람 많은 데서 함부로 하는 거 아니라고. 행복한 모습을 섣불리 보였다 심사가 꼬인 사이코패스한테 퍽치기라도 당하면 끝이라고. 이런 말을 하면 열이면 열 웃어버리는데 나는 진지하다.


몇 년 전 재밌게 읽은 소설. 주인공의 생일이던 크리스마스 이브, 가족들은 다같이 외식을 하러 갔다 묻지마 살인범의 칼에 찔린다. 세상 사람들이 너무 행복해보여서, 자기는 죽도록 불행한데 행복해보이는 그 사람들이 너무 싫어서 그랬단다. 미친놈. 그 미친놈은 소설 밖에도 존재한다. 제삼자가 감히 언급하는 게 피해자에게 죄스러울 만큼 끔찍한 범죄들이다.


세상은 무섭다. 경호원을 고용할 재력은 없고, 태권도며 주짓수를 배운대도 작정하고 찌르는 칼날을 피하진 못할 것 같다. 이왕 태어난 거 영원히 살진 못하더라도 평균수명 이상은 욕심내고 싶다. 담배와 술을 멀리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길거리에서 함부로 웃지 않는다. 혼자 멀리 나가지 않는다. 해외여행은 엄두도 안 난다. 전세계 디즈니랜드를 돌아보고 싶다는 꿈이 있는데, 그 정도 가고 싶은 곳이 되어야 목숨 걸고 다녀오지 싶다.


세계를 누비며 견문이 넓어졌다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 내가 욕심낼 수 없는 경험이고 행복이라 좀 부럽다. 그래도 내 인생, 아기자기하니 나쁘지 않다. 멀리 안 나가도 얻을 수 있는 추억도 많다. 가까운 데서 순간과 기억을 차곡차곡 쌓는 것도 그 나름 재밌다. 출근길 가로수에서 느끼는 계절의 변화. 집 근처 공원에서 넋놓다 주운 기억의 조각 같은 것들. 작은 견문을 증폭시키는 소소한 특기 덕에 나는 우울하고 답답할 새 없이 잘 산다.


오랫동안 ‘내 사소한 이야기는 누구 보여줄 게 못 되지 않나’ 생각해 왔다. 한창 여행 에세이가 인기였을 땐 지레 주눅들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모험담 가득한 흥미진진 여행기구나. 그런데 나이를 먹으니 점점 뻔뻔해진다. 어딘가엔 나같은 사람도 있지 않을까, 이런 작은 이야기에 마음이 가는 친구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 마음으로 차곡차곡 쌓을 글의 제목은 ‘멀리 안나갑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내가 느낀 것들을 조심조심 건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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