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에서 17km, 결혼식장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최측근네 누나의 결혼식에서 문득.
이렇게 사람 많은 결혼식은 오랜만이었다. 형제, 자매, 고모, 삼촌, 그야말로 사돈의 팔촌들이 서로 악수하고 포옹하며 신랑신부를 축하해주었다. 두 가족들이 섞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엄마가 바라는 결혼식이 이런 자리 아닐까.
2년 전, 최측근과 함께 살 집을 계약하고 엄마한테 전화를 했었다.
“나 이제 최측근이랑 같이 살라고. 월세 방금 계약했다.”
엄마는 너무 놀라 화도 제대로 내지 못하셨다. 이게 화날 일인가? 내 나이가 몇인데, 그 정도 결정은 스스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엄마 생각은 달랐다. 만나는 사람 있는 건 알았지만 전화로 갑자기 동거 선언을 하다니. 당황스럽고 속상하다 하시기에 뒤늦게 아차 싶었다. 그 길로 날을 잡아 양가 인사를 드렸었다. 그랬구나. 엄마는 우리가 같이 살려면 이렇게 차근차근 가족이 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하셨겠다.
너희는 언제 결혼해? 가볍게 혹은 실례인가 조심스럽게 친구들이 종종 물어본다. 괜히 물어봤나 미안해하기 전에 얼른 답한다. 아, 해야지, 하긴 할 건데 귀찮아서 엄두를 못 내고 있어. 사실 나에게는 결혼식이 허례허식 같다. 지금도 결혼한 거나 다름없이 잘살고 있는데. 결혼식에 들어가는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감도 안 온다. 식장에, 스드메 예약에, 누굴 불러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다 너무 큰일이어서 어영부영 코로나 핑계를 대온 게 벌써 2년이 넘어간다. 식만 안 올렸다 뿐이지 지금도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최측근은 고향에서 올라온 우리 가족과 2박3일 서울 여행을 함께한 적도 있다. 엄마는 돌아가는 길에 “최측근한테 꼭 잘해줘라" 세 번이나 당부하셨다.
가족 결혼식은 처음이라 가족인 듯 아닌 듯 주위를 맴돌다 어느새 사진 촬영 시간. 직계 가족끼리 찍는 사진인데 머뭇거릴 새도 없이 내 자리를 만들어주셨다. 정장도 한복도 차려입지 않은 사람이 끼는 걸 보고 도우미분이 큰소리로 “결혼한 사이에요?” 물어봤다. 다들 “했어요!” 해 줘서 그대로 찍었는데 한 발 늦게 눈치챘다. 그렇지, 결혼한 사이 아니면 평생 가는 사진에 나오면 안 되지. 그런데, 결혼한 거나 다름없는 사이와 결혼한 사이는 어떻게 다른 걸까?
정말로 다음은 우리구나. 손에 들린 부케를 보며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을 했다. 최측근네 누나들은 나를 ‘내년에 결혼할 남동생의 여자친구’, 어머님은 ‘며느리'로 소개했다. 며느리! 진짜로? 내가? 세상에 나처럼 세상 대충 사는 사람이, 심지어 귀찮아서 결혼식도 안 하고 있는 애가 며느리가 된다고? 드라마에서 봤던 온갖 며느리들이 떠올라서 생각을 털어냈다. 그건 드라마니까. 그 자리에 누구보다 듬직한 우리 큰외숙모가 떠올랐다. 성격 좋고, 요리도 잘 하고, 자식들 모두 멋지게 키워낸 멋진 외숙모. 그런데 나는 요리도 그냥저냥이고 아이도 안 낳을 건데 괜찮나? 이 자리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날 저녁. 혼란스럽고 피곤한 와중에 결혼식 뒷풀이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아... 최측근이 가면 가야죠. 정신줄을 거의 놓았는데 최측근이 단칼에 거절하고 나를 차에 실었다. 이 정도면 도리를 다했다고, 피곤할 텐데 앞으로도 이런 자리는 바로 거절하라고, 그런데 네가 거절하기 힘들 테니 자기한테 맡기랬다. 새삼 멋졌다. 역시, 나보고 세상에 딱 한 명 골라 가족이 되라고 하면 최측근이다. 지금의 최측근을 있게 해준 분들이니 그것만으로도 최측근의 가족들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 그렇지. 오늘도 그 마음으로 결혼식에 온 거다. 며느리는 호칭일 뿐이지, 그럴 것이다. 괜한 걱정은 덜어두고, 이 마음만 잘 챙겨두자.
그리고 이제 정말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다. 조만간 웨딩 박람회를 돌아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