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내 이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 Mar 16. 2022

3학년 3반 교실에 남아있는 것

비밀로 하고 싶은 나의 모자람

일 잘하기로 유명한 분이 우리 회사에 합류하신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면접 본 사람들도 극찬을 하고, 포트폴리오도 대단해서 다들 반겼다. 그 사이에서 나만 몰래 시큰둥했다. 정말 잘하는 분이 맞나?


예전에도 나름 유명한 분이 같은 포지션으로 합류한 적 있다. 해온 일들이 대단하다기에 내심 기대했는데 실력은 유명세만 못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조용히 퇴사했지만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뭐야, 흔한 월급루팡이었나. 어깨 한 번 으쓱하고 지나간 일이 떠올랐다. 그때 난 그 사람이 일을 못하는 걸 알고 어이없기만 했었나? 사실은 조금 안심도 했던 것 같다. 별거 없구나 하면서.


나랑 비슷한 연차에 비슷한 직무인 사람이 나보다 일을 잘한다 싶으면 마음이 조금 불편하다. 경력이 훨씬 많거나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대단하고 존경스럽기만 한데 이상하다. 혹시라도 나와 직접 비교가 되니까 지는 기분이 들어서일까. 초등학생 때나 그랬지 다 큰 지금도 설마... 싶었는데, 부끄럽지만 질투가 맞는 것 같다.


뭐라도 이겨 먹어야 속이 시원했던 초등학생, 무엇하나 이기지 못하는 현실을 피해 2D 세계에 빠졌던 중학생 시절을 거쳐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내 살 길은 공부밖에 없는 줄 알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친구들을 성적으로 제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들보다 좋은 성적을 받아야 명문대를 가서 더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오기로 기숙사 자습실에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다 다음날 내내 졸았던 적도 많다. 그래 봐야 천재도, 대단한 노력파도 아니어서 제자리걸음이라 머리를 쥐어뜯곤 했지만.


나는 왜 하필 주위 친구들을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 해 수능을 60만 명이 봤다. 상대평가지만 나만 잘하면 얼마든 좋은 기회를 얻을 만큼 많은 숫자였다.


10년도 훨씬 전의 이야기인데 아직도 나잇값을 못한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더 큰 것들을 이룬 사람을 보면 자꾸 비교하게 된다. 부럽기도 하고, 내가 이룬 작은 성공들이 보잘것없는 듯해 울적하기도 하다. 뒤처지는 그 기분이 싫어서 일잘러들 앞에 괜히 시큰둥한 걸지도 모른다. 그 사람과 나는 경쟁하는 사이가 아닌데. 그 사람과 나를 비교할 필요가 전혀 없는데.


고등학교는커녕 대학교를 졸업한 지도 한참 지났지만 내 좁은 마음은 고3 교실에 갇혀 있다. 언제쯤 미닫이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올 수 있을까. 마음 넓은 척이라도 하고 살면 조금 나아질까. 새로 오는 그분에게 먼저 인사라도 건네봐야겠다. 정말 일을 잘하는 분이면 좋겠다. 배울 것이 많아 내 옹졸함이 부끄러워지면 좋겠다.





* 가장 먼저 읽고 싶으시다면? 뉴스레터 [여름의 솜사탕]을 구독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