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집에서 75km, 물류센터
내가 다니는 회사의 잡플래닛 평점은 2점이 겨우 넘는다. 4점짜리 리뷰도 간간히 있지만 1점, 2점짜리 리뷰가 수두룩하다. 장점으로 꼽히는 건 동료들이 좋다는 것, 회사가 역 근처에 있다는 것. 단점은 그 외 모든 것. 특히 워라밸이 없다 못해 사람을 갈아넣는 곳이라는 이야기가 매번 나와 볼 때마다 마음이 쓰리다. 일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욕 먹을 만한 회사는 아닌데. 도덕성이 결여된 대표나 사내정치 없는 곳이 드문 걸 아는 나에게는 충분히 괜찮은 곳이다.
그리고 이런 말 대놓고 하긴 부끄럽지만 우리 회사가 만드는 제품에 자부심이 있다. 다들 서로가 어떻게 일하는지 알고 있기에 완전히 신뢰할 수 있다. 내 돈으로 제품을 잔뜩 사서 가족들이랑 친구들에게 선물할 정도다.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몽땅 쏟아부으면서 아직까지 퇴사하지 않는 건 다들 그 자부심이 있어서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자부심이 무너질 사건이 생겼다. 배송과 관련된 고객 문의가 넘치기 시작했다. 빈 박스가 왔다던가, 물량이 맞지 않다던가, 주문한 제품이 제대로 오지 않는 일이 말도 안 되게 많아졌다. 문제는 물류 쪽이었다. 원인은 우리 회사가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갔다. 나날이 쌓이는 뼈아픈 후기는 모두 맞는 말이라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우리 원래 이런 회사 아니었잖아요, 걱정이 쌓이던 도중.
지난 주 금요일, 열한 시를 훌쩍 넘긴 밤이었다. 업무용 메신저에 알림 하나가 떴다. 물류를 포장할 수 있는 공간을 가까스로 구했는데 아르바이트 하는 분들만으로는 힘들다고 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쏟아 그동안 생겼던 문제를 바로잡으려고 하는데 주말이라 죄송하지만 와주실 수 있는 분이 있냐고. 다들 잠도 안 잤는지 순식간에 댓글이 쏟아졌다. 토요일 됩니다, 일요일 오전에 약속이 있는데 오후도 괜찮나요. 한 시간쯤 고민하다 나도 손을 들었다. 저도 토요일에 갈 수 있어요.
평일에도 잠든 시간, 새벽 여섯 시 반에 일어나 회사에 출근했다. 사람들과 모여 물류센터를 찾았고 아침 아홉 시부터 밤 아홉 시까지 일했다. 박스를 접고 배송할 물건을 담고 검수까지 다함께 했다. 작업시간 내내 서 있거나 걸어야 해서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세상 처음 해 보는 일이라 더 고됐을 거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은 좋았다.
전체 팀원의 2/3 이상이 이번 작업에 주말을 내주었다.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선약이 있었을 텐데 하루씩 시간을 냈다. 짬짬이 쉬는 동안 달달한 커피를 마시며 동지애 솟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일이 많을 줄이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 줄이야 정말 몰랐어요. 진심으로 생각했다. 오길 정말 잘했다고. 오늘 하루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실은 올까 말까 고민했던 게, 몸이 피곤한 게 싫어서가 아니었다. 보답받지 못할 노력을 쏟는 걸까 걱정되어서다. 회사에 헌신해봐야 헌신짝 된다는 게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요즘. 자기계발을 하든 푹 쉬든 오롯이 나를 위해 써야 할 주말에 아무 보상도 기대하지 않고 출근을 하다니. 누군가, 아니 미래의 내가 후회할 결정을 하나 싶었다.
나중에야 어떨지 모르겠다. 일에 목이 졸려 퇴사를 할 수도 있을 거고. 회사 분위기가 변해 도망치듯 그만둘 수도 있을 거고. 하지만 오늘만큼은 동료들 사이에서 뿌듯함을 가득 느꼈으니 충분하다. 내가 왜 프리랜서가 아니라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는 걸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