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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인터뷰를 시작하며

by 여름

“요즘 어떻게 지내? 별일 없었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물어오면 음, 음, 잠깐 고민하다

“늘 똑같지 뭐, 변한 게 없네.” 하고 만다. 모처럼이니 뭐라도 이야기하고 싶은데 생각나는 것이 도무지 없다.


나는 마음을 드러내려면 뜸을 들여야 하는 사람이다. 뜸 들이기 전 내가 하는 말은 날아다니는 베트남 쌀처럼 흩날린다. 요즘 날씨가 어떻다거나, 인터넷에서 뭘 봤는데 한참 웃었다거나, 이런 찰기 없는 말이 맞은편 친구의 마음에 달라붙을 리 없다.


그때 나의 뜸들임을 기다려주는 친구를 좋아한다. 자기 이야기를 덤덤하게 해주면 최고다. 회사를 그만두고 늦잠 자는 게 즐겁다거나, 치과에 갔는데 돈이 와장창 깨졌다거나, 집 근처 새로 생긴 카페의 단골이 되어 갈 때마다 서비스를 받는다거나. 아, 그런 일이라면 나도 있지! 그때부터 내 말에도 조금씩 생기가 흐른다. 얼마 전에 누구 콘서트에 다녀왔어, 요즘은 새로운 글을 쓰고 있어, 그런 일상을 소개하다 보면 나도 놓치고 있던 내 마음이 튀어나온다.


사람 만나는 건 그래서 참, 피하고 싶으면서도 기대되는 일이다. 내가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고 오려나 초조하면서도 어떤 좋은 대화가 오가길 은근히 바라게 된다.


몇 달 전이었다. 자기 사업을 하기 위해 퇴사를 앞둔 사람과 커피를 마셨다. 그는 자신의 일을 좋아하지만 평생 이걸로 월급을 받을 순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일을 그렇게 잘하시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했더니, 경력이 쌓이고 연봉이 오르는 건 한계가 있을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언젠가 자신보다 더 적은 돈을 받고도 이만한 일을 해내는 사람이 나타날 거라고. 그는 넌지시 나에게도 물었다. 글을 아무리 잘 써도, 어느 정도 이상 되면 남들이 보기에 티 나지 않잖아요. 그러면 회사 입장에선 적당히 잘하는 사람에게 일을 주는 게 이득이고요. 여름님도 그런 고민 하실 것 같은데 어때요?


내 말문이 막힌 채 짧은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그 말들을 오래 곱씹었다. 무슨 말을 했어야 했나, 마땅한 답이 아직까지도 떠오르지 않는 건 그의 말이 사실이어서일까. 그는 내가 회사 밖에서 아무 돈을 받지 않고도 글을 쓴다는 걸 몰랐다. 글을 쓰는 게 꼭 돈을 벌기 위해서만은 아닌데, 그건 그렇다 치고 책 한 권 내본 적 없는 아마추어라면 애초에 잘 쓰는 것도 아니지 않나. 상상 속 대화를 이어나가다 보면 “왜 글을 쓰세요? 그 글을 내가 써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요?” 라는 질문에서 번번이 멈추었다.


H님을 만난 게 그즈음이었다. 마음에 고민을 품고 있었더니 평소보다 대화를 나누는 게 더 힘들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입을 떼지 못하는 나에게 H님은 찬찬히 자신의 일상부터 소개해 나갔다. 그중에 내 귀가 번쩍 뜨인 멋진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속에 커다란 느낌표가 쿠쿵 떨어졌다. 그렇구나, 나는 이런 반짝 하는 이야기를 글로 담아내고 싶은 거였다.


누구에게나 빛나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이야기는 보물찾기 쪽지처럼 일상 곳곳에 숨어 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새삼 답하지 않으면 찾지 못하는 이야기.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살면서 몇 번이고 바라볼 북극성 같은 이야기. 나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자 글을 써 왔다. 그리고 H님의 이야기는 내가 담아내고 싶은 바로 그런 이야기였다.


내 글이 다른 글에 대체되지 않을 만큼 독보적인가, 솔직히 자신 없다. 하지만 독보적이든 평범하든 나에게 감동을 준 이야기를 제대로 전하고 싶다. 마침표를 향해 걸어가는 재미 없는 인생에 쉼표, 물음표, 느낌표가 되어준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어 나는 글을 쓴다. H님, 제가 말이죠, 회사 밖에서도 글을 쓰는데, 잘은 못 쓰지만 매주 써요, 더듬더듬 시작한 이야기에 H님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와 당신의 마음속 반짝이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잘 쓰진 못하더라도 아무튼 쓰고 싶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 글이 살아가는 데 힘을 주니까 충분한 가치가 있다. 상상 속에서 되풀이하던 대화는 그제야 마무리되었다.


다가오는 주말엔 드디어 H님을 만난다. 내가 반한 그 이야기를 담아내려 인터뷰를 요청드렸다. 여름님이 부르시면 언제든 시간 내서 간다며 하트까지 붙여주셨다.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크지만, 걱정보다 설렘이 더 큰 일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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