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고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

by 여름

그럭저럭 밥벌이를 하는 10년차 직장인. 지긋지긋한 사회생활이 멘탈에 굳은살을 만들어줬다. 갑작스러운 TF 회의부터 띠동갑 팀원들과 나누는 스몰토크까지, 그냥저냥 웬만한 일을 넘길 수 있는 나는야 짬타이거. 전심전력 다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 없다. 그래서 그만큼 몸이 무거워졌다. 언제부턴가 노력을 하는 게 귀찮아졌다. 할 수 있는 일만 해도 시간 잘 가는데 왜? 작년이 재작년과 비슷했던 것처럼, 올해도 작년이랑 비슷하면 그럭저럭 만족했을 것이다. 뜬금없이 일렉기타를 사지 않았더라면.


지난 7월,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조금 생겼다. 아이패드로 혼자 피아노 배우던 게 시들해질 때였다. 락스타라면 역시 기타 아니겠나. 눈에 들어오던 예쁜 일렉기타 한 대를 들였다. 비싼 기타를 들여다보기만 할 순 없으니까 학원도 끊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청년이 된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한 것도 잠시, 난생 처음 잡는 기타는 완전히 새로운 물건이었다. 영문을 모르고 외워야 할 코드와 스케일이 잔뜩. 따로 노는 왼손과 오른손 기강 잡아야지, 피킹할 때 팔 대신 손목 써야지, 마음 급하다고 박자가 빨라지면 안 되지, 무엇 하나 익숙해지는 것이 없어서 한숨만 나오는데 다시, 다시, 또 다시. 손가락이 꼬여서 답답할 때면 죄 없는 기타줄만 세차게 긁어내렸다. 그러다 줄을 끊어먹기도 했다.


(증빙자료: https://www.youtube.com/shorts/1TGpT_xNqFU)


그 와중에 달리기도 시작했다. 언젠가 기타 치는 락스타가 될 텐데, 체력이 나쁘면 몇 곡 치다가 뻗어버릴 거 아닌가. 데뷔 이래 몇십 년간 무대를 날아다니는 락스타들을 떠올렸다. 크라잉넛, AC/DC, 자우림 등등의 음악을 들으며 동네 공원을 달렸다. 2km 뛰고 뻗어버리던 내가 두어 달 지나 10km 마라톤을 완주하게 되었다. 그참에 욕심이 생겨 러닝 클래스를 찾아다녔다. 내가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을 희한한 자세로 구현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발 내딛는 모양새 바로잡아야지, 부족한 상하체 근육 만들어야지, 들숨 날숨 호흡 신경써야지, 헉헉. 호흡이 달리고 다리가 무거워지면 나를 제치고 뛰어나가는 사람을 의식하게 된다. 얼마나 더 뛰어야 10km를 1시간 안에 완주하게 될까.


무언가 못하는 감각이 오랜만이다. 몇십 년 살아서 그렇다. 걸음마를 떼고, 글자를 익히고,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거. 모두 아득한 옛날의 일이다. 어지간한 일은 해본 일, 해온 일이 되어버렸다. 이보다 더 오래 살면 어지간한 일에 미동이 없지 않을까, 기타를 잡기 전까진 잠시 그런 생각도 했었다. 웬걸. 세상엔 내가 시작해보지 않은 오만 가지 일들이 있었다. 그중 삼만 가지 정도는 해보고 싶은 일, 사오백 가지 가지 정도는 잘하고 싶은 일일지 모른다. 첫날부터 엄청난 재능을 발휘하는 일도 한두 가지는 있겠다만, 대부분은 완전히 새롭고 처참하게 못하는 일일 것이다. 손과 발이 모두 헤매는 기타와 달리기처럼.


지금 가장 배우기 어려운 건 초보가 되는 방법 같다. 그럭저럭 따라가는 척, 그럴싸하게 따라하는 척으로는 배울 수 없는 새로운 일. 그런데도 해내고 싶으면 부딪히고 깨져야 하는 일. 어릴 때처럼 자고 일어나면 딱지가 앉고 새살이 돋는 기적은 없다. 나보다 어린 선생님께 지적을 받고, 둔한 몸을 일으켜 지루한 연습을 하고, 그런데도 잘되지 않는 일에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그러다 머리카락을 아껴야 할 나이를 의식하게 되는 지금. 다시 초보가 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남은 인생 선택할 수 있는 건 둘 중 하나뿐이다. 초보가 되는 방법을 배우거나,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거나.


기타도 달리기도 ‘그랬지만 이제는 잘하게 되었답니다!’ 말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기타 치는 손가락은 여전히 오락가락에 달리기 실력도 여전히 제자리다. 잘하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보통이라도 했으면 싶었는데. 그 보통이라는 게 몇 년이나 걸리는 일일 줄 몰랐지. 그렇지만, 알았으면 시도도 안 했을 거라는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 베테랑 초보가 되는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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