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숙사 입성기

공동 생활은 처음이라

by 김우현 Nergis

2011년, 내가 처음 살았던 기숙사는 픈득자데(Fındıkzade)라는 동네에 위치한 여자기숙사였다. 오랜 세월속에 낡았지만 깨끗하게 잘 관리된 느낌의 4층짜리 건물이었다. 기숙사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니 기숙사의 관리인인 에미네(Emine) 아블라가 나를 지하에 있는 리넨실로 데려갔다. 튀르키예에서는 이모뻘의 아주머니들을 친근하게 Abla(아블라, 언니라는 뜻)라고 부른다. 나는 베개, 담요, 침구 세트를 하나씩 받았다. 건물의 연식만큼 오래되어 보이는 베개와 담요가 약간 찜찜했다. 하지만 고온에서 다린 듯 빳빳한, 섬유유연제 향이 나는 침구 세트 덕에 조금은 안심했다. 베개와 담요가 침구 세트가 맞닿지 않게 각각 양 팔에 끼고 에미네 아블라를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이라곤 했지만 튀르키예 기준으로는 2층이었다. 지면과 맞닿은 로비층을 0층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에겐 2층인 곳이 튀르키예에선 1층이다. 그렇게 나는 우리 기숙사의 2층 왼쪽 끝에 있는 방을 배정받았다. 방 안에는 2층 침대가 세 대 놓여 있었고, 나는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온 학생이었다. 내 자리는 왼쪽 창가 쪽, 아래 침대였다.


비어있어야 할 내 자리엔 옷더미와 책들이 쌓여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 바로 위 침대는 아침에 지각이라도 한 듯 벗어던진 파자마가 난간에 반쯤 걸려있었고 이불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에미네 아블라는 뭔가를 설명하는 듯했지만, 터키어를 한마디도 몰랐던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기숙사에 오고 약 5일 뒤에 만난 으쉰(Işın)이라는 룸메이트의 말에 따르면, 내 윗 침대에는 세라프(Serap)라는 아이가 생활한다고 했다. 지금은 방학을 맞아 고향에 갔다고 했다. 의대를 다니는 아이인데 똑똑하지만 덤벙거리고 정리를 잘 못한다고 했다.


그날 에미네 아블라는 내 침대 위에 있던 세라프의 소지품들을 그 아이의 침대로 옮겨 올렸다. 그리고 내 쪽을 보며 “잘 보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침대보를 까는 법, 베갯잇을 씌우는 법, 담요에 이불 커버를 씌우는 법을 하나하나 보여주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과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2013년에 머물던 기숙사 자리 / 2011년엔 스마트폰을 쓰지 않았고 쓰던 카메라가 망가져 기록이 거의 없다


침대를 정돈한 뒤 내 사물함 자리를 알려주셨다. 6개가 나란히 늘어선 캐비넷에서 가장 마지막 사물함이었다. 높이는 약 2미터, 폭은 40센티미터 남짓, 깊이는 50센티미터 정도. 옷을 걸 수 있는 큰 칸 하나와, 아래로 세 칸의 수납 공간이 있는 구조였다. 문 안쪽에는 작은 바구니와 벨트나 목도리를 걸 수 있는 막대가 달려 있었다.


나는 캐리어를 열어 옷과 외투, 소지품 등을 넣었다. 방을 둘러보다 문 옆에 벽거울과 넓은 3단 수납장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화장대인가 보다’ 싶어 스킨, 로션, 수분크림, 선크림을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그걸 지켜보던 에미네 아블라는 신기하게 구경할 뿐이었다. 뒤에서 구경하시는 게 민망했지만 딱히 내 의사를 전달할 방법이 없어 애써 모른척 정리를 이어갔다. 나중에 으쉰을 통해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수납장은 여섯 명이 함께 사용하는 공용 공간이었다. 방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위 칸은 책꽂이, 아래 칸에는 각자의 목욕 바구니를 둔다고 했다. 방학 기간이라 수납장이 비어 있었던 탓에, 나는 용도를 몰랐던 것이다. 공용 공간 위에 아무것도 모른채 혼자만의 화장품을 가지런히 늘어놓은 모습을 에미네 아블라는 필시 재미있게 지켜봤을 것이다.


2013년 당시 사용했던 사물함, 구조는 2011년에 지냈던 기숙사와 같다


으쉰의 도움으로 캐비넷 공간 활용법을 배우며 옷을 다시 정리하고 화장품은 문에 달린 작은 바구니에 넣었다. 오후엔 마을의 잡화점에 가 작은 거울을 샀다. 그리고 사물함 벽면에 고정해 나만의 화장대를 만들었다. 그렇게 나의 기숙사 생활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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