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방울이 돈이 된다니, 동물의 숲이잖아!
최근 튀르키예 산림청은 산촌 마을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프로젝트가 있다. 그중 하나는 솔방울로 당밀을 만드는 것. 당밀(糖蜜, Molasses)은 사탕수수나 사탕무에서 설탕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설탕 결정이 분리되고 남은 끈적한 검은색 액체 부산물로, 당분 외 칼륨, 마그네슘, 철분 등 미네랄과 비타민을 함유하며, 제빵, 발효(술, EM), 사료 첨가, 유기농 비료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는 친환경 원료다. 튀르키예어로는 페크메즈라고 한다. 솔방울 페크메즈가 최근 들어 다시 주목받는 이유 역시 튀르키예의 민간요법 전통과 맞닿아 있다. 튀르키예에서는 오래전부터 소나무, 유칼립투스, 타임 같은 식물이 호흡기에 좋다고 여겨졌고, 솔방울은 특히 기침이나 가래, 기관지 불편함과 관련된 전통 요법에 사용되어 왔다. 이러한 민간 지식이 현대에 들어 건강 프로그램과 SNS를 통해 재조명되면서, 솔방울 페크메즈는 ‘면역력’이나 ‘폐 건강’을 돕는 자연식품처럼 소개되기 시작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통적 인식에 기반한 활용이며, 의학적으로 입증된 치료제라기보다는 보조적인 건강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튀르키예 사람들, 더 넓게 말하면 아나톨리아 지역의 튀르크인들이 페크메즈(pekmez)를 많이 만들고 유독 사랑하는 데에는 단순히 “달아서”라는 이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지리·역사·생활 방식이 깊게 얽혀 있다. 페크메즈는 포도, 뽕나무 열매, 무화과, 석류, 캐롭 같은 과일의 즙을 오래 끓여 수분을 날리고 농축한 전통 식품으로, 설탕이 귀하던 시절부터 사용되어 온 천연 감미료이자 중요한 에너지원이었다. 특히 튀르키예는 포도와 뽕나무, 캐롭이 잘 자라는 기후와 토양을 갖고 있어 원재료를 구하기 쉬웠고, 이로 인해 페크메즈는 특정 지역 음식이 아니라 거의 전 국민적 식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정제 설탕이 널리 보급되기 전, 사람들에게 단맛은 곧 생존과 직결되는 에너지였다. 꿀과 함께 페크메즈는 귀중한 열량 공급원이었고, 과일을 그대로 두면 금세 상해버리는 환경에서 끓여 농축하는 방식은 매우 실용적인 보존 기술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페크메즈는 겨울 동안에도 상하지 않고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었으며, 추운 계절에도 노동과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한 숟가락만으로도 힘을 낼 수 있는 음식이었다. 이 때문에 페크메즈는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라, 겨울을 대비한 저장식품이자 생존 식량에 가까운 존재였다.
이러한 실용적 가치 위에 문화적 기억이 더해지면서 페크메즈는 튀르키예 사람들의 일상 깊숙이 스며들었다. 아침 식탁에서 타힌(tahin, 참깨 페이스트)과 섞어 빵에 발라 먹는 조합은 지금도 매우 흔한데, 이는 단맛과 지방, 미네랄을 동시에 섭취할 수 있는 전통적인 고에너지 식사 방식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나 할머니가 차려주던 아침 식사의 기억, 몸이 약할 때 한 숟가락씩 먹이던 장면들은 페크메즈를 ‘건강한 음식’이자 ‘정서적인 음식’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성인이 된 후에도 많은 튀르키예 사람들은 페크메즈를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집과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전통의 맛으로 여긴다.
페크메즈의 개념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확장되었다. 원래는 과일 속 자연당을 농축한 식품을 가리켰지만, ‘오래 끓여 만든 점성 있는 전통 건강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지면서, 오늘날에는 재료가 다소 다른 경우에도 페크메즈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최근 주목받는 솔방울 페크메즈(çam kozalağı pekmezi)가 그 대표적인 예다. 솔방울 페크메즈는 포도나 캐롭처럼 당이 풍부한 재료를 농축한 것이 아니라, 어린 솔방울을 물에 끓여 수액과 수지 성분을 우려낸 뒤 여기에 설탕이나 꿀을 넣어 졸인 시럽에 가깝다. 따라서 전통적인 의미의 과일 당밀과는 제조 방식과 성격이 다르지만, 점성이 있고 오래 끓여 만든 건강식이라는 점에서 페크메즈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결국 페크메즈는 고정된 하나의 음식이라기보다, 튀르키예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건강관, 그리고 전통적 지혜가 응축된 개념에 가깝다. 포도와 캐롭으로 만든 고전적인 페크메즈에서부터, 솔방울처럼 약용 이미지가 강한 재료로 만든 현대적 페크메즈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는 달라졌지만 “자연에서 얻은 것을 오래 끓여 몸을 돌본다”는 기본적인 사고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페크메즈는 지금도 튀르키예에서 단순히 달콤한 시럽이 아니라, 세대를 거쳐 이어져 온 생활의 기억과 가치관을 담은 전통 식품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