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어 키보드에 익숙해지기까지의 시간
튀르키예에 처음 갔을 때는 2011년이었다. 아직 스마트폰이 상용화되어 있지 않았고, 내 예산에는 불가능했다. 한국도 지금처럼 카카오톡이 보편화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과 연락을 하려면 국제전화나 메일, 네이트온 등을 사용해야 했다.
그러나 국제전화는 너무 비싸서 한 달에 한 번 엄마에게 걸 때나 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는 메일이나 싸이월드, 네이트온 등을 활용했다.
당시 내가 머문 기숙사엔 와이파이는 고사하고 인터넷 자체가 없었다. 인터넷을 하려면 동네에 있는 ‘인터넷 카페’에 가야 했다. 인터넷 카페를 어찌저찌 찾아 들어갔는데 문제는 키보드였다. 튀르키예에서 언어를 배우는 것만큼 어려웠던 것은 현지 키보드에 익숙해지는 일이었다.
가장 어려운 건 @(골뱅이라고 하겠다)를 쓰는 일이었다. 해외 로그인이 막혀 있어서 메일로 인증을 해야 했다. 인증 메일 주소를 쓰기 위해 Shift를 누르고 2를 누르니 ‘(작은 따옴표)가 찍혔다. 골뱅이가 있어야 할 2 위엔 작은 따옴표가 있었다. 그날이 내 인생에 튀르키예어 키보드를 처음 접한 날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어 표시도 없고 영문 키보드와도 조금 달랐다. 튀르키예어는 라틴 알파벳을 사용하고 자판도 QWERTY 형식이라 아주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Çç, Ğğ, Iı, İi, Öö, Şş, Üü를 추가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보니 영문 QWERTY 자판과는 일부 차이가 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다듬고 키보드를 찬찬히 살펴봤다. Q 아래에 골뱅이가 있었다. Shift를 누르고 Q를 누르니 대문자 Q가 입력됐다. 당연한 일이다. Alt를 눌러도 골뱅이는 Q 밑에 수줍게 숨어 있을 뿐 도무지 화면에 입력이 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Ctrl 키와 윈도우 키도 눌러보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수중에 얼마 없는 돈으로 간 PC방이라 골뱅이와 씨름할 시간이 없었다. 카운터에 가서 직원에게 말을 걸었지만 영어를 몰랐다. 펜과 종이를 달라는 시늉을 해 겨우 받았다.
그리고 골뱅이를 쓴 뒤 위에 엑스를 그어 쓸 수 없다는 표현을 했다. 직원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애가 타서 소매를 붙잡고 내 자리에 끌고 왔다. 이메일을 쓰던 창을 보여주며 다시 골뱅이에 엑스 친 종이를 흔들어 보였다. 그제야 이해한 직원은 오른쪽 구석에 있는 ‘Alt Gr’이라는 키를 누르고 Q를 눌렀다. 그러자 골뱅이가 입력됐다.
그게 뭐라고 갑자기 안도감과 설움이 몰려와서 눈물이 났다. 어렵게 메신저를 들어갔는데 한국은 밤이 되어 다들 잘 시간이었다. 일곱 시간*의 시차도, 엉뚱한 곳에 있는 골뱅이도 다 미웠다.
설상가상으로 네이트온은 튀르키예 컴퓨터에서 제대로 깔리지도 않았다. 컴퓨터에서 한국어도 지원되지 않아 한국 홈페이지들은 모두 언어가 깨져 외계어 내지는 물음표의 향연이었다. 돈만 날리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당시 계절은 2월 늦겨울이었고, 튀르키예가 1년 내내 서머 타임을 적용하기 전이어서 7시간 차이가 났다.
다음날엔 한국에서 가져온 노트북을 갖고 다시 인터넷 카페를 찾았다. 어제의 그 직원에게 컴퓨터를 보여주며 인터넷 선을 꽂는 곳을 가리켰다. 직원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카운터 근처 자리로 안내했다.
컴퓨터 뒤에서 인터넷 랜선을 뽑아 내 노트북에 연결해줬다. 그러자 인터넷 신호가 잡히는 표시가 시작줄에 떴다. 감격해서 박수를 치자 직원도 같이 웃으며 박수를 쳐줬다.
어학원 기간 동안에는 그렇게 노트북을 사용해 튀르키예어 키보드를 다시 찾을 일이 없었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하고 과제를 하기 시작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튀르키예어로 입력을 해야 하다 보니 튀르키예어 자판이 필요해졌다. 다행히 그 사이 기숙사에도 인터넷 카페가 생겼다. 종이에 수기로 먼저 쓰고 고쳐 가며 초안을 만들었다. 그리고 인터넷 카페에 내려가 타자로 쳐서 교수님께 보내곤 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가고 과제량이 늘어나자 인터넷 카페에 의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 사이 기숙사에는 와이파이도 생겼다. 그래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 튀르키예어 키보드를 추가하는 법을 찾아봤다. 의외로 쉬웠다. 언어팩을 설치하고 변환한 뒤 눌러보니 내 노트북에서 튀르키예어가 입력됐다. 이제 자판에 익숙해질 일만 남았다.
종이에 Çç, Ğğ, Iı, İi, Öö, Şş, Üü를 작게 써서 자른 뒤 노트북에 붙였다. 자주 쓰는 특수기호도 한국과 다른 것들은 한국어 자판 위에 작게 붙였다. 그렇게 대학 생활 내내 튀르키예어 키보드에 적응해 나갔다.
약 10여 년을 함께한 컴퓨터가 수명을 다했다. 새로운 컴퓨터를 사야 했는데 한국에서 살지 고민을 하다가 튀르키예에서 사기로 했다. 어차피 한국어 자판은 외우고 있고 문서는 튀르키예어로 작성하는 일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금까지 쓰고 있는 노트북을 샀다. 처음에는 골뱅이도 못 찾아 울던 내가 지금은 한국어 자판만큼 편하게 튀르키예어 자판을 쓰고 있다. 심지어 데스크탑용 키보드도 튀르키예 키보드로 샀다.
이젠 튀르키예어가 더 편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지금 쓰는 노트북이 최근 들어 상태가 좋지 않다. 아직은 한국어 키보드를 다시 맞이할 준비가 안 되어 있어 조금 더 버텨주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