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먹어야 힘이 나지
한국인이 밥심으로 살아간다면 튀르키예인들은 빵심으로 살아간다. 소유트알란 마을 사람들은 집에서 빵을 만들어 먹었다. 마을에서 만드는 빵은 크게 두 종류였다. 화로에 굽는 빵과 화덕에 굽는 빵이었다.
화로는 마싕가(Maşınga)라고 불렀다. 이 화로는 가스레인지이자 오븐의 역할을 한다.
왼쪽의 작은 화구에 땔감을 넣고 불을 붙이면, 윗부분에 팬이나 냄비를 올려 조리를 할 수 있다. 오른쪽의 뚜껑을 열면 넓적한 쟁반을 넣어 오븐처럼 쓸 수도 있다. 쟁반에 넣고 구워 이 화로에서 만든 빵은 접시빵(Tepsi ekmeği)이라고 불렸다.
접시빵을 한 접시 구우면 2인 식구는 하루 세끼 기준으로 이틀 정도 먹었다. 4인 가족은 보통 하루면 끝났다.
모든 집에 가스레인지는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의 연령대는 대부분 60~70대였다. 그래서 화로가 더 익숙했다. 하루 종일 화로 위에서는 찻주전자가 뭉근히 끓고 있었다. 점심에 먹을 메뉴가 올라가 있기도 했고, 막 구운 빵을 식히는 자리이기도 했다. 겨우내 먹을 병조림도 화로 위에서 뜨거운 증기에 밀봉되고 있었다.
튀르키예는 개들도 빵심으로 뛰어다닌다. 산자락에 자리한 마을이라 여름이면 옥수수밭에 멧돼지가 곧잘 출몰했다. 그래서 마을에는 사냥개를 키우는 집이 몇몇 있었다.
누렛딘 아비와 레이한 아블라는 사냥개 세 마리를 키우고 계셨다. 하루 종일 양을 치다 돌아온 레이한 아블라는 아저씨와 함께 드실 빵을 굽고 나서, 다른 반죽 덩이를 하나 더 꺼내셨다. 손님맞이라도 하시려는 줄 알고 여쭈었다.
“아냐, 이건 우리 개들 줄 거야. 걔들도 밥 먹어야지.”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접시에 발효된 반죽을 넣어 화로에 넣으셨다.
흔치 않게 화덕에 굽는 집도 있었다. 마을 아래에 사는 아이셰 아블라네는 남편과 한창 크는 아이 셋, 집안일을 도와주러 온 남동생까지 모두 여섯 식구가 함께 살고 있었다. 화로에 한 접시씩 구워서는 택도 없었다.
그래서 집 옆에 만들어 둔 화덕을 사용했다. 아이셰 아블라는 얇은 가지들을 빠르게 태웠다. 아직 불씨가 벌겋게 살아 있는 재를 긁어 화덕 앞에 쌓았다. 그리고 반죽 덩이들을 화덕 안에 넣은 뒤 철판으로 덮고, 재로 틈을 막았다.
그렇게 나온 빵은 안쪽 방에서 충분히 식혔다. 이후 면포에 싸서 보관했다. 이 빵은 사나흘 동안 식구들의 식탁을 책임졌다.
모두가 빵을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은 아니었다. 부부가 모두 바쁘거나 연세가 많은 집들은 빵트럭을 이용했다. 소유트알란 마을에는 빵집이 없어서, 매일 아침 일곱 시쯤 이웃 마을 빵집에서 트럭에 빵을 싣고 들어왔다.
우리도 보통 이 트럭에서 빵을 사 먹었다. 빵트럭은 마을 입구 카흐베 앞에 잠시 섰다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윗마을부터 아랫마을까지 천천히 한 바퀴를 돌고 이웃 마을로 떠났다.
시내나 다른 마을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저녁에 돌아오는 길에 빵집에 들러 빵을 사 왔다. 동네 아주머니 몇 분은 인근 공장에 다니셨는데, 공장 셔틀을 타기 전 빵을 사 오기도 했다.
우리 옆집에 사는 부부도 시내에서 빵을 사 왔다. 일곱 살 딸과 두 살 아들을 키우며 밭일과 시댁 일을 함께 해야 했던 아이셰 아블라였다. 화덕에서 빵을 굽던 아이셰 아블라와는 동서지간이어서, 형님 쪽은 큰 아이셰, 이 집은 작은 아이셰로 불렸다. 작은 아이셰 아블라네 집 창문은 길가로 나 있어 사람이 지나가면 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나와 큐브라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갈 때면, 남편인 이브라힘 아비는 우리 소리를 듣고 현관으로 나와 늘 큰 소리로 물어보셨다.
“너희 빵은 먹었니? 집에 빵은 있어?” (Kızlar ekmek yediniz mi? Evinizde ekmek var mı?)"
이브라힘 아비는 우리가 끼니를 챙겼는지를 묻듯, 빵을 먹었냐고 물어보셨다. 이 표현은 이스탄불에서도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보통은 ‘식사했어?’라는 뜻으로 음식이라는 의미의 yemek을 써서 “yemek yedin mi?”라고 묻기 때문이다. 그런데 ‘빵 먹었니?’라는 말은 생소하면서도 이상하게 친숙했다. 정말 우리의 “밥 먹었어?”처럼 들렸다.
그날은 모두 늦잠을 자는 바람에 빵트럭을 놓쳤다. 저녁은 그냥 파스타로 때우자고 이야기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파스타 먹으려고요”라고 대답했다가 크게 혼이 났다.
“빵이 없으면 내가 늘 얘기하라고 했지! 이 마을에서는 내가 너희 삼촌인데! 빵이 없어? 여보, 빨리 빵 가져와!”
아이셰 아블라도 어쩜 빵이 없는데 말을 안 하냐며 두 덩이나 들고 나오셨다. 다른 부족한 건 없냐며 토마토와 고추를 텃밭에서 따 주시려 했다. 정말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럴수록 더 혼이 났다.
“또 빵 없으면 와서 얘기해. 사람이 빵을 먹어야지. 빵 먹어야 너희 돌아다닐 수 있지. 내가 너희 삼촌이고 우리 마누라가 너희 숙모야. 배고프면 와. 알겠지?”
강아지에게 먹일 빵을 굽던 레이한 아블라와, 빵 먹었냐며 늘 먼저 챙겨주던 이브라힘 아비를 떠올리면 빵은 단순한 주식이 아니었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도 식구를 위해 차려내는 어머니의 손길이었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를 향한 최소한의 배려였으며, 이웃에게 내미는 가장 확실한 안부였다.
튀르키예에서 빵은 배를 채우는 음식이기보다 사람을 붙잡아 두는 마음에 가까웠다. 튀르키예인들과 식탁을 함께하게 된다면, 집주인이 건네는 빵을 꼭 한 조각 집어 들기를 권한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