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단어. 튀르키예어.

나의 올챙이 적 시절

by 김우현 Nergis

지금이야 튀르키예어로 하고 싶은 말은 웬만큼 다 하며 산다. 그뿐이랴. 다른 사람이 하고 싶은 말까지 통역해 주며 산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한 마디도 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이스탄불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어학원, 딜 메르케지(Dil Merkezi)에 다녔다. 어학원 수업은 보통 오후 한 시 전후로 끝났다.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간단히 치킨랩을 사 먹거나, 카페테리아에 내려가 치즈 토스트를 사 먹었다. 어학원에서는 매일같이 숙제가 나왔는데, 낮 시간의 기숙사는 늘 조용해서 주로 방에서 숙제를 했다. 가끔 룸메이트들이 방에 있으면 위층 독서실로 올라갔다.


숙제를 끝내면 동네를 돌아다녔다. 내가 살던 곳은 픈득자데(Fındıkzade)라는 동네였다. 이스탄불대학교 의대 캠퍼스 두 곳이 모두 이 동네에 있어서 의료용품점, 약국, 의학 서점이 유난히 많았다. 나는 간판과 상점 유리에 붙은 단어들을 하나하나 소리 내지 않고 읽으며 걸었다. 내가 대여섯 살 때 아직 한글을 깨치기 전, 그때도 간판 글자들을 물어보며 글자를 익혔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나는 또 간판을 따라 읽고 있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보내고 기숙사로 돌아오면, 카페테리아를 운영하던 부부의 딸이 와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그 아이는, 내가 어학원 교재를 들고 내려가 발음이 어려운 단어를 손가락으로 짚으면 몇 번이고 또박또박 읽어주던 착한 아이였다. 나는 대신 영어 숙제를 도와줬다. 둘이 과자를 먹으며 공부하다 보면 룸메이트들이 하나둘 돌아왔다.


우리 방에는 나를 제외하고 다섯 명의 학생이 더 있었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영국에 교환학생을 다녀온 으쉰은 우리 방에서 영어가 가장 유창했고, 성격도 외향적이었다. 으쉰의 윗침대에는 의대 5학년이던 셀린이 살고 있었다. 차분한 성격의 셀린은 튀르키예어도 영어도 늘 조곤조곤 말했다.

그 옆 침대에는 부르주와 두이구가 있었다. 영어교육학과였던 부르주는 내가 튀르키예어 숙제를 할 때 가장 큰 도움을 준 친구였다. 두이구는 우리 방의 맏언니였다. 튀르키예어학과 박사 과정생이었던 두이구는 주로 기숙사에서 논문을 쓰며 지냈다. 그리고 내 윗침대, 세라프. 셀린과는 정반대로 늘 조금 어수선한 의대생이었다.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해 초반에는 대화가 거의 불가능했지만,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우리는 늘 킬킬거리며 웃었다. 훗날에는 대입을 위한 미적분 특강까지 받았다.

룸메이트들은 옷을 갈아입고 쉬면서 나에게 오늘 공부한 것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날 한 숙제를 보여주면 틀린 부분을 고쳐주거나, 이해하지 못한 대목을 다시 설명해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튀르키예어와 영어는 기본이고, 손짓 발짓까지 총동원한 시간들이었다.


숙제 점검이 끝나면 1층 카페테리아로 내려가 함께 저녁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봤다. 텔레비전은 한 대뿐이었고, 대부분 드라마가 흘러나왔다. 내용을 거의 알아듣지 못하던 나는 그저 화면만 바라봤다. 드라마 속 사람들은 늘 뭐가 그리 슬프고, 심각하고, 총을 쏘는지. 조금 지루했지만 올라가도 할 일이 없어 룸메이트들 옆에 앉아 있었다. 그 무렵은 튀르키예가 아직 유로비전에 참가하던 시기였다. 유로비전이 열리면 밥만 먹고 올라가던 몰도바나 그리스 친구들까지 모두 자리에 앉아 텔레비전을 봤다. 그러면서 내 귀도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몇 가지 단어를 알아듣기 시작하자 방에는 새로운 규칙이 생겼다. 방 안에서는 영어 금지. 순전히 나를 위해 두이구가 만든 규칙이었다. 으쉰과 부르주는 가끔 몰래 영어로 도와줬지만, 두이구는 무척이나 강경했다. 하루아침에 벙어리가 된 나를 셀린은 가여워하면서도 끝까지 튀르키예어로만 천천히 말했다. 세라프는 애초에 나와 영어로 대화한 적이 없어서, 여전히 신나게 말을 쏟아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원래도 빠르던 말이 더 빨라졌다는 것 정도였다.

규칙과 함께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됐다. 두이구는 저녁마다 내 하루 일과를 물었다. 처음에는 무심코 “Today…”로 시작했다. 그러자 두이구는 눈썹을 가운데로 모으며 고개를 살레살레 저었다.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Kelime, kelime, Türkçe.(단어, 단어. 튀르키예어.)”


한 단어씩이라도 좋으니 튀르키예어로 말해보라는 뜻이었다. 문제는 내가 아는 단어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두이구와 마주 앉으면 늘 영-터, 터-영 사전을 펼쳤다. 손바닥만 한 Redhouse 사전이었다. 내가 아는 단어들을 툭툭 내놓으면, 두이구는 그걸 바탕으로 내가 하려는 말을 유추해 문장을 만들어주곤 했다. 단어 몇 개로 하루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두이구의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우리는 매일같이 스무고개를 했다. 그래도 두이구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 내 하루를 물어봤고, 단어들을 문장으로 엮어주었다. 나는 그것을 듣고 따라 말했다.


어느 날,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기 위해 우체국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숙사를 나서려는데 볼일을 보고 돌아오던 두이구와 마주쳤다. 두이구는 나와 이야기할 때만 나오는 독특한 말투가 있었다. 평소에는 은은한 미소로 차분히 말하지만, 나에게는 어린 아기에게 말 가르치듯 천천히, 정확하게, 얼굴 근육까지 크게 써 가며 말했다.

그날도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웃으며 물었다.


“WOOHYUN, NEREYE?(우 현, 어 디 가?)”


우체국이라는 단어도, 간다는 동사도 알고 있었지만 문장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결국 걷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PTT, GİTMEK.(우 체 국, 가 다)”


대답을 들은 두이구는 박장대소하며 다녀오라는 인사를 해줬다. 나는 이번에는 제대로 전달했다는 뿌듯함에 어깨를 펴고 나갔다. 그날 저녁, 방에 돌아오니 룸메이트들이 우체국에는 잘 다녀왔냐며 웃었다. 그리고 세라프가 다가와 ‘우체국에 간다’는 문장을 알려줬다. 그 뒤로 어딘가에 간다는 말만큼은 제법 그럴듯하게 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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