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설탕과 미각에 스며든 국가의 역사
나는 디저트류를 좋아해서 튀르키예에 머무는 동안 일부러 시간을 내 각종 디저트를 먹으러 다녔다. 바클라바, 큐네페, 카트메르부터 시작해 케이크나 와플까지 종류도 많았고 재료도 풍부했지만 기대와 달리 실패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대부분 너무 달았다. 처음에는 그저 튀르키예 사람들이 단맛을 유독 좋아해서 설탕을 많이 쓰는 문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설명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같은 디저트라도 가게마다 단맛의 결이 비슷했고, “조금 덜 달게 해 달라”는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단맛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이 디저트 자체에 이미 내장돼 있는 성질처럼 느껴졌다.
알고 보니 그 이유는 ‘설탕의 종류’에 있었다. 한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설탕은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설탕이거나 옥수수 시럽인 경우가 많다. 반면 튀르키예에서 사용하는 설탕은 거의 전적으로 사탕무에서 추출한 설탕이다. 사탕무 설탕은 사탕수수 설탕에 비해 체감 당도가 훨씬 강하고, 같은 양을 써도 단맛이 빠르게 치고 올라온다. 실제로 사탕무 설탕은 사탕수수 설탕보다 약 30% 더 달다고 한다. 한국에서 자라며 상대적으로 마일드한 단맛에 익숙한 내 혀에는 튀르키예 디저트의 단맛이 과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느꼈던 ‘과도한 단맛’은 조리법의 문제가 아니라 원료의 차이에서 비롯된 감각의 충돌에 가까웠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겼다. 왜 튀르키예는 사탕무 설탕에 집중했을까?
튀르키예에서 사탕무 설탕이 자리 잡은 건 공화국 수립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스만 제국 말기까지 설탕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는데, 이는 외화 유출과 식량 안보 측면에서 큰 부담이었다. 1923년 공화국 수립 이후 아타튀르크 정부는 자급자족형 산업화를 국가 목표로 삼았고, 그 상징적인 산업 중 하나가 바로 설탕이었다.
아나톨리아 내륙은 기후와 토양이 사탕무 재배에 적합했고, 사탕무는 농업과 공업을 동시에 키울 수 있는 작물이었다. 설탕 공장은 단순한 생산시설이 아니라 지역 경제와 고용을 떠받치는 핵심 인프라로 기능했다. 이 과정에서 사탕무 설탕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국가 산업화의 성과물이자 농민 보호 정책의 중심이 됐다. 정부는 설탕 공장을 국영으로 운영하며 생산량과 가격을 통제했고, 사탕무 재배 농가에는 안정적인 판로가 보장됐다. 이렇게 사탕무 설탕은 자연스럽게 ‘국산 설탕’의 대명사가 됐다.
설탕 수입이 강하게 제한되어 온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값싼 수입 설탕이나 고과당 옥수수 시럽이 대량으로 유입될 경우, 국내 사탕무 농가와 설탕 공장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이는 단순한 시장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농촌 붕괴와 실업, 지역 경제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튀르키예는 오랫동안 높은 관세나 수입 물량 제한 등의 수입 규제를 활용해 사실상 설탕 수입을 차단해 왔다.
이런 구조 속에서 등장한 상징적인 브랜드가 콘야 셰케르(Konya Şeker)의 토르쿠(Torku)다. 콘야 셰케르는 사탕무 농가 협동조합이 소유한 기업으로, 공화국 초기부터 이어진 사탕무 중심 설탕 정책 속에서 성장한 존재다. 콘야 지역은 대표적인 사탕무 재배 지였고, 농민들은 단순한 원료 공급자가 아니라 회사의 주인이자 이해관계자였다.
콘야 셰케르는 설탕 생산에만 머무르지 않고 토르쿠 브랜드의 제과, 유제품, 가공식품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도 ‘사탕무 설탕 사용’, ‘고과당 옥수수 시럽 무첨가’, ‘국산 원료’라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 문구가 아니라, 튀르키예가 설탕을 전략 산업으로 다뤄온 역사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값싼 수입 설탕 대신 국내 사탕무 설탕을 쓰겠다는 선택은 원가 측면에서는 불리할 수 있지만, 농가 보호와 식량 주권이라는 국가적 기조와는 일치한다.
이러한 상황을 보니 시드니 민츠의 『설탕과 권력』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민츠는 설탕을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제국의 경제 구조와 노동, 권력이 만들어낸 감각의 산물로 설명한다. 사람들이 단맛을 ‘좋아하게 된 것’조차 역사적 선택의 결과라는 것이다.
튀르키예의 설탕은 제국주의 무역이 아니라 자급자족과 농민 보호라는 전혀 다른 경로를 거쳐 형성됐지만, 한 가지 점에서는 민츠의 주장과 정확히 만난다. 개인의 미각은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내가 튀르키예에서 느꼈던 강한 단맛은 개인의 취향 차이가 아니라, 한 나라가 선택해 온 산업 구조와 정책이 일상적인 미각에까지 스며든 결과였다. 디저트 한 입의 단맛 뒤에는 사탕무 농가와 설탕 공장, 그리고 자급자족을 꿈꾸던 공화국의 선택이 함께 녹아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