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를 굴러간 양배추

채소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

by 김우현 Nergis

튀르키예에서 살기 전까지 나는 채소를 일부러 찾아 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나마 엄마가 시금치 된장국, 나물 무침 등을 해 주신 덕에 골고루 먹었지만 먹으면 먹는 거였고, 없으면 굳이 찾지 않는 정도였다. 식탁 위에서 채소는 늘 주인공이라기보다 곁들이는 존재였다.


그런데 튀르키예에 와서 식탁을 마주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손이 먼저 가는 건 채소였다.

처음에는 고기가 싫어서 대안책으로 먹었다. 14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양고기는 근처에도 가기 힘들다. 양 특유의 누린내를 감당하기 힘들다. 문제는 튀르키예에서 양기름이 별미라는 것. 소고기 다짐육만 들어가는 요리에도 양기름을 조금씩 넣어 ‘풍미’를 더한다. 그래서 튀르키예에서 약 5년간은 붉은 고기에 손도 대지 않았다.


스테이크 같은 통으로 된 고기는 먹을 수 있지 않냐고 물을 수 있다. 희한하게 붉은 고기를 접하지 않으니 소고기의 누린내도 점차 싫어졌다. 신선한 고기인데도 어딘가 시큼한 기운이 섞여 있었고, 입에 넣으면 은근한 누린내가 따라왔다. 처음에는 고기가 잘못된 줄 알았다. 몇 번을 다시 사서 구워 봤지만 비슷했다.

나중에서야 그게 이곳 소고기의 특징이라는 걸 알게 됐다. 소들이 먹는 사료나 손질 방식, 숙성 과정이 한국과 달라서라고 했다. 그 뒤로 나는 자연스럽게 소고기를 멀리하게 됐다. 대신 닭고기와 생선을 찾았다. 하지만 기숙사에서는 생선이 거의 나오지 않았고, 닭고기도 점점 질려갔다.

그런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알록달록한 샐러드들과 메제(Meze). 튀르키예는 싱싱한 제철 채소를 가볍게 손질해 올리브유와 레몬즙만 뿌린다. 시저니 오리엔탈이니 과한 드레싱을 사용하지 않아 재료 본연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식당에 가면 으레 나오는 토마토, 오이 슬라이스와 샐러드

튀르키예식 반찬 격인 메제. 늘 모든 음식에 메제를 먹는 건 아니고 라크를 파는 가게나, 생선, 케밥 전문점 등을 가면 볼 수 있다. 주로 올리브유로 요리한 차가운 채소 요리들이 많이 나오는데 산뜻하고 맛있다.


다양한 종류의 메제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꾸덕한 요거트에 딜을 섞은 것과 아티초크 올리브 요리, 초절임 토마토


튀르키예 음식에는 제철 채소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볶고, 굽고, 올리브 오일에 푹 익히고, 때로는 차갑게 식혀서 낸다. 양념은 강하지 않지만, 대신 채소 자체의 맛이 또렷하게 살아 있다. 입에 넣으면 “이게 이런 맛이었나” 싶은 순간들이 자주 찾아왔다. 특히 가지와 껍질콩, 애호박, 오크라는 이제 가장 좋아하는 요리가 되었다.


가장 좋아한 껍질콩 요리. 회사 밑 카페테리아에서도 포장해와서 먹고 집에서도 가끔 만들어 먹었다.


시장에서 본 채소들은 더 직접적이었다. 그날 아침에 밭에서 막 따온 것처럼 흙이 묻어 있었고, 햇빛을 오래 머금은 색을 하고 있었다. 토마토는 유난히 붉었고, 오이는 향이 진했다. 채소를 사 와서 씻어 한 입 베어 물면, 별다른 조리 없이도 충분히 맛있었다.


노점에서 파는 채소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채소를 찾게 됐다. 좋아하게 됐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주말에는 단지 내 피크닉 장으로 산책을 나가, 씻은 셀러리를 들고 햇빛을 쬐며 오독오독 씹어 먹은 날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이곳 채소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크다. 생각보다 훨씬 크다.


거대한 수박과 호박, 참고로 튀르키예 수박은 저만한 게 보통 4-5천 원 내외

처음 수박을 봤을 때는 괜히 웃음이 나왔다. 두 손으로 안아야 할 만큼 묵직했는데, 가격은 한국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가벼웠다. 호박도 그랬다. 하나만 사도 한동안은 계속 먹어야 할 것 같은 크기였다.


그리고 양배추.


그날은 2020년 12월 31일이었다. 친구들과는 유튜브로 드론쇼를 본 다음, Zoom으로 송년회를 하기로 약속했다. 저녁 메뉴는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양배추 스테이크를 할 예정이었다. 마트에 가서 양배추 하나를 골라 안았다. 작은 푸들 한 마리 정도의 사이즈였다. 겉잎이 단단하고 속이 꽉 차 보였다. 튀르키예는 채소 코너에 있는 얇은 비닐에도 손잡이가 달려 있다. 그것만 믿은 게 내 잘못이었다. 채소 코너의 비닐은 정말 정말 얇다. 약간 과장을 보태면 우리나라 크린랲보다 강도가 약하다. 양배추가 생각보다 무거웠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마트에서 집까지는 도보로 15분 거리였다. 집에 오는 길, 우리 아파트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찻길을 하나 건너야 하는데 횡단보도가 제대로 없다. 유목민족답게 말을 몰 듯 차도 험하게 모는 사람들이 신호도 없으니 정말 쌩쌩 달렸다.

그 길에서 비닐이 양배추의 무게를 못 견디고 스르륵 찢어져 버렸다. 양배추는 드디어 해방이라는 듯 도로 위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나는 순간 멍하니 서 있었다.


차도로 굴러간 양배추는 한 번, 두 번 더 굴러가다가 도로 한가운데에서 멈췄다. 차들은 도로 한복판에 덩그라니 있는 양배추에 놀라 양옆으로 달렸다. 그렇다고 내가 줍도록 멈춰 주지는 않았다. 나는 어쩔 줄을 몰라하며 약 1분간 양배추를 바라봤다. 한 대쯤은 멈춰 줄 법도 한데 차들은 한 대도 서지 않았다. 그렇게 2분이 더 흐르고 가까스로 차 한 대가 멈추며 클락션을 울렸다. 운전자는 얼른 주워 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황급히 뛰어가서 양배추를 안아 들고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다음 차도 밖으로 돌아왔다. 그 3분여의 시간이 너무 길게도 느껴졌고, 쌩쌩 달리기만 하던 차들이 너무 야속했다. 눈물이 펑 터져서 차도 옆에서 양배추를 품에 안고 엉엉 울며 돌아왔다.


문제의 그 양배추. 친구들에게 사이즈를 비교해 주기 위해 맥북 에어 13인치를 놓고 같이 찍었다. 그리고 비닐..

운 건 운 거고, 집에 와서 양배추를 씻어 겉잎을 떼고 스테이크를 만들어 먹었다. 친구들이랑 Zoom으로 대화하며 그 양배추 스테이크를 먹기까지의 일을 이야기했다. 모두들 박장대소를 했다. 심지어 한 친구는 6년째 그 일을 두고두고 놀릴 정도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장면도 결국은 이곳에서의 생활의 한 조각이다.


채소가 커서, 들고 가다가 떨어뜨리고, 그게 도로로 굴러가고, 다시 주워 와서 씻어 먹는 일. 그런 사소한 일들이 쌓이면서, 나는 이곳의 식탁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채소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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