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 알코올이 진통제가 된 사연
소유트알란 마을의 유일한 슈퍼. 이르판 할아버지와 피크리예 할머니가 운영하신다. 주말에는 도시에 살고 있는 아들 에르잔 아저씨가 와서 가게일을 돕는다.
마을 슈퍼에 처음 들어간 날,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계산대 앞 낮은 매대에는 알록달록한 껌과 사탕, 과자들이 있었다. 나라를 불문하고 도시든 시골이든 꼬마들이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홀리도록 형형색색의 과자들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조금 더 안쪽에는 홍차와 소금, 설탕, 파스타면, 밀가루, 붉은 렌틸콩 등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식료품이 있었다.
벽에 있는 진열대에는 샴푸, 비누, 면도기, 크림, 세탁세제, 주방세제 등의 생활용품들이 있었다. 시골 마을 슈퍼인데 약국만큼 모기 기피제가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산속에 있고 소와 양이 많으니 모기 기피제가 마을에는 필수다.
나도 처음에 그냥 갔다가 첫날 모기에게 잔뜩 물린 뒤로는 바로 슈퍼에 가서 모기 기피제를 샀다. 그리고 아침마다 모기 기피제를 뿌리며 외출 준비를 하는 루틴이 생겼다.
이 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마을 어르신들이 어려서부터 살던 집이었고, 튀르크식(Alaturka)이라 부르는 화변기를 쓰던 시절이었다. 그땐 화장실이 아니어도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나무 막대를 손에 쥐고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풀이며 벌레며 들여다보았다.
지금은 나무를 깎아 만든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바닥에 앉기도 힘든 노인이 되었다. 자식들은 그런 부모님을 위해 양변기로 교체해 드렸다. 그마저도 세월이 흘러 누수나 잔고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슈퍼 한편에는 강력접착제나 실리콘 같은 간단한 보수용품들이 있었다. 이르판 할아버지의 슈퍼는 마을의 철물점이기도 했다.
이쯤 되니 이 가게는 단순히 먹을거리와 생활용품을 파는 곳을 넘어,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끌어안고 있는 공간처럼 보였다.
그런데 실리콘보다 더 의외의 물건이 옆에 있었다. 선명한 오렌지색과 분홍색의 액체였다. 그날은 마침 주말이라 에르잔 아저씨가 가게를 보고 있었고, 아저씨에게 저 물건이 무언지 여쭤봤다.
아저씨는 변성 알코올(isprito)*이라고 답했다. 원래 이 물건은 불을 붙일 때 주로 사용한다고 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진통제로도 많이 쓴다고 답했다.
가연성의 화학물질이 진통제라니, 독성도 있을 터라 진통제로 쓴다는 말에 나는 내가 잘못 알아들은 줄 알았다. 아저씨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변성 알코올: 에탄올에 메탄올 등을 첨가하여 음용 불가능하게 만든 공업용 알코올. 주로 페인트 희석제, 연료, 청소용 용제, 살균제로 사용되며, 강한 독성이 있어 마시면 안 되는 인화성 액체다. 대부분 에탄올에 5-10% 정도의 메탄올을 섞고, 색소를 넣어 눈에 띄도록 구분한다.
“마을 사람들은 어딘가에 부딪혀 통증이 있을 때 솜에 변성 알코올을 적셔 올려둔단다. 그러면 통증이 가신다고 믿거든.”
“신기하네요. 실제로 효과가 있나요?”
“아니, 그럴 리가. 일종의 플라세보 효과지. 치통이 있을 때 사람들은 라크(40도가 넘는 튀르키예의 전통 증류주) 같은 높은 도수의 술을 마셔서 마취를 시켰어. 일시적으로 통증이 완화되니 사람들은 높은 도수의 알코올이 마취 효과가 있다고 믿은 게지.”
나는 속으로 라크 마취법이 독실한 무슬림들은 쓸 수 없는 방법이겠다고 생각했다. 아저씨는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무슬림은 입에 술을 대면 안 되잖아. 그래서 변성 알코올을 사용하기 시작한 거야. 음용 알코올이 아니니까 순전히 치료 목적으로 쓴다는 주장인 거지. 그런데 얘야, 이게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위험한 발상이니. 무지, 무지란 이런 거란다.”
아저씨는 안타까우면서도 울화가 치미는 표정으로 변성 알코올을 쳐다봤다. 우리의 대화가 막 끝났을 때 한 아주머니가 가게에 들어왔다.
아주머니는 식기세척기용 세제가 있냐고 물었다. 에르잔 아저씨는 이 마을에 식기 세척기 있는 집이 몇이나 있겠냐는 말로 답했다. 아주머니는 입을 삐죽거리며 다음엔 도시에서 올 때 몇 개 사다 놓으라고 말하곤 일반 주방세제를 사서 돌아갔다.
멀어지는 아주머니 등에 대고 아저씨는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식기세척기 좀 들였다고 저렇게 티를 낸다며 중얼거렸다.
이르판 할아버지의 가게에는 이렇게 식료품과 생활용품은 물론이고, 때로는 사람들의 오래된 생활 방식과 믿음까지 함께 놓여 있었다.
이스탄불에서는 집 앞 작은 구멍가게에서도 식기세척기용 세제를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르판 할아버지의 슈퍼는 앞서 「요거트병과 다짐육에 담긴 경제」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유제품은 전혀 팔지 않았다. 토마토나 오이 같은 채소도 없었다.
이 시골 마을에는 텃밭에 널린 게 토마토와 오이다. 할아버지의 슈퍼는 온전히 마을 사람들의 필요에 맞춰져 있었다.
에르잔 아저씨는 즐거운 대화였다며 레몬 소다 한 병을 따서 내게 건네주셨다. 고개를 젖혀 소다를 마시던 중, 선반 위에 있던 변성 알코올의 선명한 색과 눈이 마주쳤다. 강한 탄산의 소다는 입안에서 요란스럽게 보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