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두 개의 봄이 있다

벚꽃이 피는 봄, 튤립이 피는 봄

by 김우현 Nergis

나는 스물한 살부터 14년 동안 이스탄불에서 살았다. 학생 때는 긴 여름 방학 기간에 한국에 왔고,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라마단처럼 긴 명절과 합쳐서 휴가를 썼다. 다만 라마단 명절이 매년 열흘씩 당겨지긴 하나, 내가 입사해서 한창 회사를 다닌 동안엔 계속 여름과 맞물렸다. 그렇게 14년의 봄을 모두 이스탄불에서 맞이했다.


어릴 때 살던 집 마당엔 작은 앵두나무가 있었다. 봄이 되면 그 작은 녀석이 작은 초록잎을 내고 꽃망울을 틔웠다. 나는 매일같이 밟는 흙마당이 꽁꽁 얼어있다가 녹으면 봄이 온 줄도 모르고 그저 질척인다 투정했다. 그리고 배은망덕하게도 한두 발짝 늦게 찾아온 앵두꽃을 보며 봄을 알아챘다.


튀르키예로 떠나기 전 나는 집이 일산에 있었다. 호수공원에 봄이 오면 목련과 벚꽃이 만개했다. 나는 그게 예뻐서 친구들과 봄이면 꼭 공원에 가 뱅뱅 돌며 꽃구경을 하고 수다를 떨었다.


때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해였다. 자가격리 때문에 한국행 휴가도 잘려 울적하던 시기였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단톡방에서 답답함과 꽃놀이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때 밤산책을 나간 친구가 달밤에 흐드러지게 핀 목련나무를 찍어 보내왔다. 내년에는 꼭 실물로 볼 수 있을 거라며. 그 사진은 한동안 내 카카오톡 배경사진으로 쓰였다.

친구가 보내줬던 목련 사진

예상과는 달리 다음 해에 한국에 오진 못했지만, 드디어 2024년부터 바이람이 봄과 맞물렸다. 4월 초중순이라서 벚꽃 시기를 간신히 맞출 수 있었다. 목련 사진을 보내줬던 친구와 나는 4년 만에 벚꽃을 보러 갔다.

2024년 4월에 본 벚꽃


그렇다면 튀르키예에 봄이 없느냐, 있다. 우중충한 이스탄불의 겨울 장막을 걷어내고 화려한 색색의 튤립들이 이스탄불 곳곳을 물들인다. 따스한 날씨에 꽃나들이 온 사람들 틈엔 봄볕을 쬐러 나온 고양이도 있다.


1. 튤립 정원 / 2. 봄볕을 즐기는 이스탄불 고양이


나도 여느 이스탄불 주민들처럼 도시락을 싸서 친구들과 공원에 가곤 했다.


코로나가 아직 심하던 시기라 1인용 도시락 싸서 각자 먹기


이 시기에는 공원이나 길가 꽃나무나 장미에 봄을 맞이하는 색동끈들이 나부끼는 걸 곧잘 볼 수 있다. 이 풍경은 흐드렐레즈라는 봄맞이 축제와 이어져 있다.

흐드렐레즈(Hıdırellez)는 튀르키예와 발칸 지역에서 5월 5일 저녁부터 6일까지 이어지는 전통 축제로, 자연의 부활과 풍요, 소망의 성취를 기원하는 날이다. 사람들은 나무 가지에 소원을 적은 리본이나 천 조각을 묶어두었다가 다음 날 해가 뜨기 전 그것을 가져와 냇물이나 바다 같은 흐르는 물에 던진다.

내가 보기엔 날짜는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다. 대부분 나뭇가지에 꽃망울이 움트면 묶어두고, 꽃이 지기 전에 수거해 가는 듯하다. 그렇게 봄꽃이 핀 동안 가지엔 끈도 같이 매달려 있다. 내 친구 중에도 꽃나무에서 다시 수거해 온 끈을 손목에 묶어두었다가 소원이 이루어지면 풀겠다고 하는 아이가 있었다.


꽃나무에 매달린 색실들, 파란색 악마의 눈을 함께 매다는 사람도 있다(오른쪽 사진)


내 튀르키예 이름인 네르기스(Nergis), 수선화를 튀르키예에선 네르기스라고 부른다. 수선화도 대표적인 봄꽃이다. 공원에는 튤립과 함께 수선화가 피어있다. 꽃가게와 마트에는 작은 수선화 화분들이 보이고 길에서도 수선화를 파는 집시들을 볼 수 있다.

퇴근길에 나도 종종 수선화를 한 다발씩 사곤 했다. 그게 내가 이스탄불에서 봄을 즐기는 소소한 방법 중 하나였다.


좌: 봄나들이를 나온 나온 가족 / 우: 집시들이 길에서 파는 수선화

그래서 나에게 봄은 여러 얼굴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보낸 봄을 생각하면 자연히 어린 날에 대한 향수와 친구들을 향한 그리움이 피어났다. 반면 현실로 돌아와 이스탄불의 봄을 보면 생동감 넘치고 포근했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미세먼지, 꽃가루와 사투하면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벚꽃 포인트를 찾아다녔다. 혼자서도 다니고 친구들과도 다녔다. 그렇게 14년의 공백을 보상받은 것 같은 봄을 보냈다.

반면, 튤립과 수선화가 없는 봄이 어딘가 어색했다. 이스탄불에서 보던 알록달록하고 향긋한 봄은 한국에서 찾기 어려웠다.

한국의 봄은 내가 나고 자란 나라에 대한 향수였다면, 튀르키예는 선택해서 산 나라에 대한 향수라고 생각한다. 어느 한 곳이 더 아름다워서 그리운 것은 아니다. 나에겐 이제 두 개의 집이 생겼고, 때에 따라 그리워할 곳도 두 군데가 된 것이다.

1. 유럽사이드의 즐겨가던 카페 2층은 내 목련 스팟 / 2. 카드쿄이 골목은 백매화 스팟 / 3. 이스탄불집 우리 동과 옆동 사잇길은 겹벚꽃과 백매화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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