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사 산자락에서 배운 인류학의 시간

윗마을과 아랫마을, 그 사이를 걷다

by 김우현 Nergis

소유트알란(Söğütalan) 마을과 인연을 맺게 된 건 학교 덕분이었다. 나는 이스탄불대학교에서 인류학, 그중에서도 문화인류학을 전공했다. 문화인류학 전공자에게는 특별한 졸업 조건이 있다. 튀르키예의 시골 마을에서 4주 이상 참여관찰조사를 진행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다. 준비는 3학년부터 시작된다. 우리 학년에서 문화인류학을 선택한 학생은 나를 포함해 14명. 모두 각자 답사를 떠날 지역을 찾기 시작했다. 교수님은 마르마라 권역을 추천하셨고, 우리는 여러 조건을 고려해 결국 부르사를 선택했다. 부르사 시청과 구청 단위의 행정 구역을 하나씩 살펴보며 마을을 걸러 나갔다. 주요 경제활동이 목축업과 농업일 것, 세대수는 100세대 내외일 것, 전문적인 산업 규모로 발달한 곳은 아닐 것. 한 세대가 먹고살만한 크기의, 자연스러운 생활 기반을 가진 마을이 필요했다. 그 조건에 가장 잘 맞는 곳이 바로 부르사 지역의 소유트알란이었다.


이미지 출처: 구글 지도


소유트알란은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뉜다. 윗마을에는 무하지르(Muhacir)들이, 아랫마을에는 체르케스(Çerkes)들이 모여 살았다. ‘무하지르’는 인종 청소나 전쟁으로 인해 오스만 제국으로 이주한 무슬림들을 일컫는 말이다. 특히 소유트알란의 무하지르들은 1894년 불가리아에서 이주해 왔기에, 지금도 ‘94년의 무하지르들’이라고 불린다. 체르케스인은 북코카서스의 체르케스 지역에 살던 토착민으로, 아디게인이라고도 불린다. 이들 역시 무슬림으로, 러시아 제국의 학살을 피해 오스만 제국 시절 이주해왔다고 한다.


두 집단은 오래전에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마을에 살면서도 서로 간 혼인은 거의 없었다. 차라리 산 넘어 다른 마을에서 신부를 데려오는 일이 더 흔했다고 한다. 기도를 드리는 사원 역시 구분해 사용했기 때문에, 지금도 윗마을 사원과 아랫마을 사원이 따로 남아 있다. 그러나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이제는 예전의 거리감이나 반감은 거의 사라졌고, 왕래도 자연스럽고 친밀하다. 아저씨들은 마을 입구의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 모여 함께 차를 마신다. 아주머니들은 함께 코바늘로 편물을 짜고, 농번기에는 서로의 밭일을 돕는다.


아랫마을과 윗마을을 연결하는 길


앞으로 소유트알란에서 보게 될 풍경과 사람들이 보여줄 모습은 어쩌면 튀르키예의 보편적 생활일 수도 있고, 이 마을만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담은 장면일 수도 있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지만, 또 분명히 다른 생의 결을 가진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글을 통해 튀르키예가 여행지나 역사적 장소를 넘어, 한 사회가 품고 있는 일상의 온기와 결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