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품어준 도시 이스탄불

누군가 품어주길 원한다면 먼저 다가가야 한다

by 김우현 Nergis

나는 원래 새로운 환경에 쉽게 뛰어드는 사람이 아니다. 안정을 추구하고 변화를 꺼리는 편이다. 도전적이지 않은 성격, 조용한 내향형의 기질,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예민함. 이런 세 가지는 나를 늘 ‘안전한 공간’ 안에 머물게 했다. 그래서 처음 ‘튀르키예’라는 나라에 간다고 결정했을 때, 주변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놀랐다.


처음에는 여행이라 생각하고 일주일만 있어보자는 마음으로 갔다. 아타튀르크 공항(이스탄불 공항 건설 이전에 사용되던 이스탄불 공항)에 내려 밖으로 나왔다. 눈 앞에 커다란 광고판에는 삼성 핸드폰을 광고하고 있었고 택시들은 현대차였다. 한국의 대표 대기업 두 브랜드를 본 순간 여기에서 뭔가는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마치고 이스탄불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어학원을 찾아가 초급 코스를 등록했다. 그리고 기숙사 관리청(KYK)을 찾아갔다. 튀르키예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립 기숙사가 도시마다 있다. 집과 먼 대학에 가는 경우 학생들은 KYK에 신청해서 국립 기숙사에 머물 수 있다. 내가 튀르키예에 처음 갔을 땐 어학원에 등록한 외국인도 국립 기숙사에 거주할 수 있었다. 나는 KYK에 얘기해서 어학원과 다소 거리가 있더라도 공부하기 좋은 환경을 부탁했다. 덕분에 이스탄불대학교의 의과대학 캠퍼스가 있는 동네에 배정됐다.


정원이 120명 내외인 이 기숙사에는 대부분 의대생과 이스탄불대학교 학생들이 머물고 있었다.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어 동네도 기숙사도 조용했다. 독서실에는 늘 누군가 공부하고 있었다. 이 기숙사는 모두 6인실이었는데 2층 침대가 3개씩 들어가있고 캐비닛 6개, 공용 책걸상이 하나 있었다. 당시 2월이라 학기는 시작 전이었다. 룸메이트들은 모두 고향에 가있어 아무도 만나지 못했고 그날밤 낯선 방에서 혼자 잠들었다. 시차 적응도 어렵고 너무나 낯선 공간이기에 쉬이 잠들지 못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동이 밝을 무렵 기도 시간을 알리는 에잔 소리가 울렸다. 기숙사 코앞이 자미(사원)라서 에잔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 옆방 문이 열리고 기도실로 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내 감각은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탐색 중이었다.


아침에 기숙사의 매점이자 식당인 칸틴(kantin)에 내려갔다. 달걀, 올리브, 토마토 등의 간단한 식재료가 있었다. 기숙사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식권을 주어 음식을 구매할 수 있었다. 달걀과 빵, 토마토를 주문하기 위해 매점 주인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영어를 전혀 모르셨다. 여태까지는 영어가 일부 통했는데 드디어 영어를 전혀 모르는 튀르키예인과 마주한 순간이었다. 사고싶은 물건들을 지목하고 식권을 내밀었다. 아주머니가 뭔가 말씀하셨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때 어떤 여자아이가 와서 영어로 식권에 돈이 남으니 올리브를 추가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해주었다. 내 기숙사 생활을 쭉 도와주게 될 나디아와의 첫만남이었다. 올리브를 집어올리며 아주머니를 바라보자 됐다는 듯이 웃어주셨다.


며칠간은 밖으로 나가는 것도 긴장됐다. 하지만 배가 고프면 결국 움직이게 마련이다. 튀르키예 말도 음식도 낯설어 한동안은 식당 밖에 걸린 사진을 보고 들어갔다. 식당도 아니었다. 먹을 수 있는 게 치즈 토스트밖에 없어 빵 사이에 치즈가 녹는 사진이 걸린 곳만 찾아들어갔다. 우리로 생각하면 경기도 고양시 어딘가의 작은 김밥집. 한국어는 하나도 모르는 외국인이 들어와서 야채김밥만 매일 사먹는 광경이다. 주인 아저씨는 내가 서툰 튀르키예어로 Peynir tost bir(치즈 토스트 하나)-정석으론 Peynirli tost bir tane lütfen(치즈 토스트 하나 주세요)라고 해도 유쾌하게 웃으며 내 주문을 받아주셨다. 그 웃음이 마치 “여기 있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동네 빵집의 빵냄새, 고물 장수 아저씨가 외치는 소리, 길에서 차이(çay,튀르키예식 홍차)를 마시는 아저씨들. 튀르키예는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었다. 천천히 걷고, 천천히 말하고, 천천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 속도는 내가 차근차근 적응할 여유를 주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여기를 견딜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문제는 튀르키예가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의 부족이었다. 나는 도전적이지 않은 성격이었지만, 그래도 도전했다. 나는 내향적이었지만, 그래도 시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예민했지만, 그래도 기숙사에서 나만의 방식을 찾아갔다. 그리고 매순간 나를 도와주고 맞아준 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깨달았다. 적응이라는 건 성격이 바뀌어서 되는 게 아니라, 그 성격을 가진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라는 것을. 나를 품어준 튀르키예, 이스탄불. 앞으로 그 이야기들을 펼쳐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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