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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양 Mar 14. 2018

제주살이, 불안과 기대

헤이즐의 잡설


사실 우리는 이렇게 빨리 제주에 가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일 사이 사이에
옅은 불안감이 느껴질 때 마다 '이게 잘 하는 것인가' 고민했다.

이런 저런 것들을 결정하고 고민하던 날,
동백을 본 후 서귀포에서 제주시로 넘어가며
갑자기 배가 아팠다. 아, 차를 세우고 싶다...

하지만 차는 중산간을 통과하는 도로에 진입했다.
지도앱에는 카페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가야 뭔가 나올 것 같았다.

이런저런 언쟁을 하느라 날카로웠던 공기가 무거워진다.
말 없이 한숨만 쉬었다.

공장부지와 농가주택만 있는 산길을 오른지 5분 정도 되었을 때,
갑자기 카페가 보였다.

옛날 교회당을 개조한 것 같은 건물(할렐루야!),
평화로운 내부, 하늘 빛을 그대로 받은 듯한 채광.

우리에겐 무거웠던 현실, 여기에 생리현상이 겹쳐 
꾸깃꾸깃해진 얼굴이 아인슈페너 한 잔에 스르르 펴진다.
(물론 깨끗한 화장실도...)

갑자기 세상이 아름답다. 카페를 둘러 본다. 
인형들이 있고 짝궁의 잔은 하트 모양이고...
볕이 너무 좋아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정해진 길로 가지 않고 있다.

'마음 먹으면 떠나면 되지'할만큼 가벼운 마음이 아니다.
그만큼 책임감을 느끼고, 기대도 된다.
혼자가 아닌 둘이라서, 의지가 되는 만큼 마음도 먹어야 하니까.

우리가 가는 이 길에도, 
이 카페 같은 좋은 쉼표가 나타나주길 바란다.

그리고 이런 쉼표를 잘 찾을 수 있는 매의 눈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주길 바란다.

한 사람이 못찾더라도, 
다른 한 사람이 찾으면 얼마든지 차를 돌릴 수 있으니까.

본능이 준 교훈이라면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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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0일 페이스북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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