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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양 Mar 16. 2018

소확행(小確幸)은 내 옆에 있다

헤이즐의 잡설

기왕에 제주로 이사를 왔으니,
매화를 보자며 야심차게 나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온 날이었다.

'꽃놀이'를 하러 간다고 하면 보통 넓은 꽃밭이나 군락지를 생각한다.
비슷한 생각으로 길을 나섰던 건데, 
찾아보니 제주에 매화 나무 군락지는 모두 조성된 공원이나 농원 안에 있었다.
한림공원, 노리매 공원, 휴애리 농원...
입장료 만원씩 내고, 멀리 가야했다. 
여유가 있을 때는 갈 수 있지만 그러기엔 좀 부담스러웠다.

시간도 별로 없고 해서 바다를 보고 오는 길,
노지에 아무렇게나 유채꽃이 피어있다.
듬성듬성 피어있다가도, 갑자기 꽃이 폭발하듯 잔뜩 피어있기도 했다.
꽃을 마주치는 것이 이렇게 반가울 줄 몰랐다.

차를 반납하고 집에 오는 길, 
우리는 그토록 보고 싶던 매화를 봤다.
옆집 담벼락에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 행복들이 내 옆에 있는데 자꾸 먼 곳을 쳐다봤던 마음이 들켜 뜨끔했다.



요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가리켜 소확행(小確幸)이라고 부른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필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쓴 표현인데,
일상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기쁨을 이르는 말이다.
1980년대 이후 버블경제가 붕괴되며 침체된 일본 사회에서도
화려하고 멋진 삶 보다는 지금 바로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복들을 찾으려는 심리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3포에 이어 7포세대까지 나온 마당에,
미래를 그리고 희망을 가질만한 구석이 점점 줄어든다.

이럴 땐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을 찾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나도 짝궁도, 이런 기쁨을 더 누리기 위해 이 곳에 왔을 것이다.
서울이나 대도시보다 상대적으로 내 공간을 구하기 쉽고,
큰 맘 먹지 않아도 바다와 숲에 금세 갈 수 있는 곳이 제주니까.

높은 빌딩이 없어 길을 걷다보면 하늘이 꼭 시선에 닿고,
공기가 좋아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을 자주 볼 수 있다.

쾌청한 날에는 한라산 능선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리고,
바닷가에서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

우리가 좋아하는 곳에서 지내며, 작업을 하고
동네를 산책하며 매화와 동백꽃을 실컷 볼 수 있다.



남들과 비교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 나의 템포를 찾을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선진국에서도 '소확행'으로 부를만한 삶의 방식이 있다고 한다.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들, 자주 느끼는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에서 많이 봤던 '휘게(Hygge)'라는 말도 이런 맥락이다.
정서적인 편안함과 안정감이 중요한 덴마크 사람들의 삶의 방식.

미국에서는 '마이크로 산책(Micro Walks)'으로, 
프랑스는 '오캄(Au calme)'으로,
스웨덴에서는 '라곰(Lagom)'으로,
각자의 문화와 패턴에 맞게 변형되었다.



오늘은 맛있는 토스트를 해먹었다.
식빵에 동그랗게 구멍을 뚫어 계란을 터트려 넣어 굽는다.
노른자가 터지지 않고 빵도 맛있게 구웠다.
한라봉 잼을 발라 짝궁이랑 먹는데, 너무너무 맛있다.

작지만, 우리의, 확실한 행복
소소한 일상의 기쁨은 
늘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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