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에세이
결혼할 때 큰이모가 선물을 주셨다. 그건 바로 거대한 반짇고리. 한지공예를 하는 이모가 직접 팔각 보석함을 만들어 그 안에 명주실과 바늘, 색실 등을 채워주셨다. ‘결혼하면 왜 이런게 필요할까?’라고 생각하면서도 큰이모가 직접 주신거니 신혼집에 고이 모셔두고 살았다.
아기를 임신하고 보건소에 임산부 뱃지를 받으러 갔더니 이런저런 안내책자를 주었다. 고위험 산모 혜택, 모유수유 성공하는 법… 그 사이에 끼인 A4 한 장이 팔랑거렸다. 임산부 대상 무료 수업 안내였다. 임산부 요가를 꼭 하고 싶었던 나는 먼저 요가 수업에 대기를 걸었고, 그 다음에 눈길을 끈 것은 ‘아기 딸랑이 만들기’ 수업이었다. 드디어 이모의 반짇고리가 출동할 때가 온 것이다.
선생님이 너무 장사를 해서 수업은 별로였지만 십수년만에 손바느질로 토끼 모양 딸랑이를 만든 건 보람있었다. 물론 아기는 다른 장난감이 너무 많아 토끼는 가끔 흔드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그 다음 도전은 아기 베개였다. 춘천에서 공방하는 사장님께 부탁해 너굴양과 댕댕군 캐릭터로 본을 떠 주십사 부탁했다. 너굴양과 댕댕군은 나와 신랑의 만화 캐릭터다. 댕댕군 베개는 신생아때부터 아기가 잘 써주었다. 지금은…베개 없이 데굴거리며 자서 그냥 인형이 되었고.
아기를 낳고 반짇고리는 생각보다 자주 쓰였다. 아기 옷 소매나 밑단이 조금 뜯어질 때도 있었고, 작은 구멍이 생겨 기워줘야 할 때도 있었다. 어제는 아기가 어린이집에서 안고 자는 강아지 인형에 매준 리본이 뜯어져 붙여주고, 오늘은 아기 장난감 유아차 밑단이 뜯어져 천을 대어 기워주었다. 특별히 뭔가 아껴쓰려는 노력을 하는 게 아닌데도 자잘하게 손바느질을 해야할 일들이 있었다.
아기를 재우고 한밤중에 반짇고리를 열어 실을 바늘에 끼우고 바느질을 하는 조용한 시간. 앞으로도 이렇게 저렇게 아기를 위해 바느질을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