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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양 Aug 22. 2015

나는 혼자 일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프리랜서 생존기 (2) 혼자 일하기

먼저 읽고 오자 지극히 개인적인 프리랜서 생존기 (1) 나는 어떻게 세상 밖으로 나왔나


그렇게 어영부영 독립을 하고, 주변 도움으로 어떻게 어떻게 일은 들어오기 시작했다.

에버노트 커뮤니티에서 같은 배경, 다른 캐릭터로 명함을 만들었다.

많은 분들이 신청해주셨고 개인 명함 의뢰도 들어왔다.

첫 달에는 그 일들로 정신이 없었다.

직접 인쇄 발주를 넣는건 너무 오랜만이라 하나씩 다 체크하느라 일도 느렸다.

그때 도와주셨던 분들 너무너무 감사하다. 은행 기록이 남아있는한 모든 이름을 기억할 수 있다!

(감사의 또르르...)


본격적으로 '혼자 일하는' 시간이 시작되었고, 가장 먼저 부딪힌 건 '공간'이었다.

그림을 그리던 포토샵을 하던 일을 할 곳이 필요했다.

학생때부터 카페에 앉아 공부하고 책 보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혼자 돌아다니는 게 어색하진 않았다.

이직하는 사이에 반년 쉰 적이 있었는데 이때 간간히 들어오는 일을 하며 경험했던 게 도움이 됐다.

오히려 '아지트'를 찾아내고 싶어 눈에 불을 켜고 집에서 가까운 홍대, 서촌, 북촌 등을 헤집고 다녔다.

하지만 겨울에 노트북 가방을 멘 뚜벅이는 제약이 많았다.

겨울은 여러모로 돈도 안돌고 다니기도 춥고 힘든 계절이다


'어디서 일하는 가'는 추후에 또 쓰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좋은 일터는 카페다.

프랜차이즈 카페는 익숙하고 편리해서 좋고, 동네 구석의 작은 카페는 하루종일 있기 좋고 사장님과 말을 트면 짐 걱정 없이 화장실도 다닐 수 있다.(이게 은근히 신경쓰인다)

커피값으로 일하는 공간을 몇 시간이나 빌릴 수 있다는 건 좋았다.

좋아하는 커피도 마시면서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기도 좋았다. 만날 사람이 찾아오기도 좋았고.


그 다음 문제는 패턴이었다. 워낙에 아침에 일어나는게 힘드니 아침에 눈을 뜨면 해가 중천이다.

점심을 해먹고 어슬렁 나가 자리잡으면 두세시, 저녁 때 되면 따박따박 배는 잘도 고프다.

누가 저녁 먹자고 부르면 쪼르르 달려가고, 누가 부르지 않아도 집에 와 저녁을 먹는다.

누구 말처럼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택한 자유가 아닌가! 부르짖으며 데이트도 하고 맥주도 까 마시고 영화도 보고...

마감일이 정해진 일이 없으면 저녁 먹은 후에는 안봐도 뻔하다.

TV보고 페이스북하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보면 또 새벽이다.

'하루에 8시간 일한다고 가정하면 6시간은 일하고 2시간은 하고 싶은거 해야지!'

라는 거창한 계획은 첫달부터 와장창 깨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습관은 도저히 몸에 배이지 않았다. 약속이나 미팅이 들쑥날쑥 하는 주간이면 어김없이 늦잠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9 to 6라는 강박이 있었을까?


몇 달을 그렇게 지내다가 가을쯤에 홍소장님(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이 진행하는 1인기업 강의를 듣게 되었다. 거의 10년째 1인기업으로 일하고 계시다보니 노하우도 많으실 것 같았고, 같은처지(?)의 혼자 일하는 분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기도 했다.


1인 기업으로 몇년째 공력이 쌓인 분들도, 회사 다니며 착실하게 준비하는 분들도 많이 모였던 자리


강의를 듣고,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시간관리에 대한 요지는 '시간을 쪼개 쓰지말고 만들어쓰고, 일이 완성되는 시간을 단축하라' 였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주어진 일을 하고 퇴근한다.

협업이 많으니 다른 사람들과 일하는 시간도 맞춰야 하고 일정한 공간에 모여있다.

'일은 업무시간에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혼자 일할 때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시간이고 엉덩이 붙이고 있는다고 일이 잘 되지도 않고 오히려 억지로 밖에 나오니 성과 없이 힘만 드는 날도 있었다.


나는 홍소장님의 말을 이렇게 해석했다.

'시간이 아닌 목표 중심으로 생각하라'는 것, 그리고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혼자 일하는 사람은 모든 일을 혼자 한다. 도움을 받을 때도 있지만 거의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고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거기서 정말 중요한 일에는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이고 기계적인 일에는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래서 이 일을 만족스럽게 혹은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어떤 일을 해도 이렇게 해야 하지만 분업화 되어있는 회사보다 혼자 모든 것을 관리하며 일하는 프리랜서에게는 이것이 '경쟁력'이자 '필수요건'이라는 점이 달라보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하는 주체는 '나'이기 때문에 최대한 내가 일하기 좋고 효율적인 환경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만들어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언제 일하고 싶은지, 언제 잘 되는지 등을 파악해서 시간을 만들어놓고 일하는 것이다.


내가 잘못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때까지도 엉덩이 싸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중요하고 끝장을 봐야 하는 일이라고 판단하면 엉덩이 싸움을 하면 된다. 그 외에는 멍때리고 놀고 돌아다니고 그렇게 내 것을 만드는 인풋 작업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아니면 차라리 운동하고 좀 더 자라고 권하고 싶다. 프리랜서는 체력이니까.


어쨌든 그날의 강의는 내가 일을 바라보는 방식을 조금 바꿔주었다. 그래서 나중에 자세히 얘기할 에버노트도 더 신경써 관리하기 시작했다. (다른 글에서 프리랜서에게 필요한 스마트워크 툴과 생산성 앱 등을 소개해볼까 한다. 특히 오리지널 데이터를 관리해야 하고 소소한 일감이 많으며 잦은 수정 때문에 워크플로우가 중요한 사람이라면 정말 필요한 것들이다) 그리고 '일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혼자 일하면서 힘들었던 점을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의외로 생각이 안난다.

일하는 장소, 시간 관리가 제일 힘들었고 지금도 끊임없이 고민하는 부분인데, 나머지는 솔직히 다 재밌다.


외로울 순 있다. 같이 일하는 사람 없이 혼자 야근하면 적적하기도 하고...에이전시 다닐 땐 야식 먹으며 부장욕도 하고 고객도 까고 그러는 맛이 있었는데. 그럴땐 페북을 들여다 본다. 물론 중요한 얘기는 쏙 빼먹고 수다를 떤다. 고양이와 개가 잔뜩 등장하는 영상을 보며 스트레스를 푼다.


가장 부담스러운 건 혼자 결정을 내리고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점, 좋은 결과도 나쁜 결과도 모두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건 외로움보다는 고독함의 영역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던 크던 회사와 조직은 나를 지켜주었다. 동료들과 성과를 나누고 지지받고, 힘들땐 같이 짐을 지는 일은 프리랜서에게 없다. 버거울 땐 가끔 그리워지지만 결국 나의 선택이 어떨지를 잘 알기에 그냥 버틴다. 그리고 나와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도 많은 위로가 된다.


혼자 일하면서 가장 즐거운 것중 하나가 만나는 사람들의 영역이 정말 넓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골프쪽에서 햇수로만 10년차에 들었는데 일 때문에 직접적으로 만난 사람 외에는 모르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특히 한 회사에 오래 다녔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프리랜서가 되면서 일하는 영역이 달라지고, 고객의 범위도 달라졌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세상에는 혼자 일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1인기업으로 무역하는 사장님, 전문 강사, 금융 컨설턴트,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소셜 마케터, 아나운서, 성우 등등...수도 없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자기 일을 좋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버티는거임) 가정을 꾸리고 자기 몫을 해내는 프로페셔널이었다. 아직도 헤매는 나와는 다르게 멋진 분들을 많이 만났다.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 '멋지다'는 말을 가끔 듣는데, 아마 그런 모습만 보여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내가 생각하는 멋진 프리랜서는 평일 오후에 카페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보부상같이 짐가방을 이고 지고 다니고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써야 하지만

좋아하는 만큼 멋들어지게 해내고 끝까지 책임지고 일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어지간하면 하지 마시라고 자꾸 권하는거지만...


다음편에는 <일이 없을때 버티기>를 써볼까 한다. 반응이 좋으면 호호.


다음 메인에 올라가 정말 많은 분들이 봐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 많이 공유할게요!

프리랜서 너굴양의 작업물은

http://www.facebook.com/nergulyang

http://blog.naver.com/nergulyang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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