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프리랜서 생존기 (3) 일 없을 때 버티는 법
먼저 읽고 오시라
지극히 개인적인 프리랜서 생존기 (1) 나는 어떻게 세상 밖으로 나왔나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출퇴근'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이었다.
초,중,고등학교까지 걸어서 10분 거리였고 대학도 가까운 곳에서 다녔는데, 회사에 들어갔더니 아침에 한시간이나 시달려서 가야하고 퇴근은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 칼퇴근을 하는 날이 어쩌다 있어도 집에 도착하면 파김치가 되어있기 일쑤였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출근길에 평균 50분 이상을 쓴다고 한다
관련기사 http://m.naeil.com/m_news_view.php?id_art=6386)
아무튼 출퇴근 없는 프리랜서를 즐기고 있던 어느날...

일이 끊겼다.

가게를 새로 차리면 이른바 '오픈빨' 기간이 있다.
어영부영 프리랜서가 된 나에게 일감을 주는 주변 사람들 덕에 3-4개월을 어떻게 버텨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두꺼비집 내리듯 일이 '뚝' 끊긴 것이다.
어쩌다 전직(轉職)을 했으니 고정 고객이나 납품처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손그림 명함 한가지로 그 시간을 버틴 것도 사실 신기한 일이었다.
난감했다.
다음달 카드값, 대출이자, 학자금(올해 다 갚았다. 오예!)에 프리랜서의 허세를 유지할 커피값, 교통비, 경조사비, 가끔 드리는 엄마 용돈, 밖에 나오면 밥은 사먹어야 하고 가끔 맥주도 사먹고...색연필 사야하고 노트는 왜이렇게 빨리 떨어지는지...머리에 쥐가났다.

거기다 늦봄부터 여름은 유독 일이 없다. 휴가철에 누가 그림을 주문하겠나 여행 티켓을 사지.
근데 어쩌랴. 당장 먹고 살 궁리는 해야하니 앉아있을 틈이 없었다.
(누워는 있었다. 움직이면 배고프니까...)
만나는 사람에게 빌붙는 것도 하루이틀이고, 엄마밥 축내는 것도 눈치가 보여 '뭐라도' 하기 시작했다.
이름이 일러스트레이터인데, 그래서 매일 그림을 그렸다. 일하는 것 보다 더 많이 그렸다.
그리고 매일 페이스북 페이지와 블로그에 올렸다. 당시 네이버에서 새로 시작한 포스트 서비스에도 올려봤다.
어떻게든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볼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러면 우연찮은 기회에 너굴양 이름 석자가 생각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종잣돈도 없고 포트폴리오도 얇은 초짜 작가의 탈출구는 온라인 홍보였다.

그림을 올리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반응해주었다. 나는 또 거기에 반응하고...조금씩 소통하는 재미를 느꼈다.
어쩌다 들어오는 주문을 처리하면서도 그림일기는 꾸준히 그렸다.
너굴양이 등장하지 않는 다른 그림들도 그렸다. 쪼들리긴 했지만 메인 일이 많지 않으니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게 좋았다.
에버노트 코리아와 웹툰 작업도 했다. 시간이 많아(흑흑) 사무실에 출근하다시피 들락거리며 일했다.
(올해 싱가폴, 대만에 영어와 중국어로 번역이 되어 포스팅 되기도 했다는건 자랑!)
그리고 그걸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콩만큼 팔렸지만 티셔츠 제작업체에 디자인도 제공했다.
물론 콩만큼 팔렸으니 라이센스 비도 콩만큼 들어왔지만 들어오는 제안을 거절할 입장도 아니었다.
작업도 무척 재미있었다. 서툰게 많았는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기도 했고...
요는 '뭐든 했다'는 것이었다.
지금와서 갖다 붙이자면 그때 뭐든 그리고 보여준 것이 조금씩 쌓여 다른 일을 불러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조앤 롤링이나 공지영 작가처럼 어려울 때 쓴 작품이 대박이 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뭔가 쪼들릴 때 내 걸 만들려고 노력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먹고사니즘도 중요하지만 '내 것' 만들어 먹고 살려는 사람들에겐 오히려 절체절명의 순간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핑계 저핑계 대고 주변에 연락도 자주하고 사람들도 일부러 자주 만났다.
주문했던 분들께 연락도 괜히 해봤다. 아...정말 여기저기 많이 찔러본 것 같다.
요즘도 찌름(?)은 멈추지 않는다. 틀어박혀 집중할 때도 필요하지만 '안 풀린다' 싶을 때는 의외로 밖에서 큰 힘을 얻는다. 광화문 언저리라던가 덕수궁, 대학로 길 같은데를 걸어다니면서 위로가 되기도 하고, 전시라도 보면서 자극이 되기도 하고...정말 돈이 없을땐 교보문고에서 몇시간씩 책을 봤다.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서 차 한 잔 하는 것도 자극이 많이 된다. 별 얘기 안해도 돌아오는 길에 이런 저런 구상도 해보고 의외의 꼴라보가 탄생하기도 한다. 당장 성사되지 않아도 잘 여물어 되돌아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도 가장 큰 힘이 된 건 역시 가족들, 친구들이 믿고 기다려준 것이었다. 이제는 추억이 될 그분도 많이 도와주었고...주변에서 큰 힘이 되어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여유가 생길때마다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데 잘 하고 있나 모르겠다.
1인기업/자영업자/프리랜서 등의 이름을 달고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옆에서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누군가이다. 어떤 비즈니스 하는 분이 창업하려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충고했던 글에서 공감이 갔던 것 중 하나가 '급할 때 융통할 수 있는 자금줄'을 꼭 만들어 놓으라는 것이었다. 자본금도 없이 몸으로 때우는(?) 나 같은 생계형 작가야 큰 돈이 필요 없지만 급할 때 손 내밀어주는 분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마음을 주는 사람들이 소용없다는 소리가 아니라는 건 아니다. 내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준다는 게 얼마나 큰 일인가! 내가 한 걸을 내 딛을 때 마다 좀 덜 휘청거리도록 도와주는 사람들 덕에 다들 어찌어찌 버티는 거다.
어떤 사람도 혼자만 잘나서 이뤄내는 건 없다. 오히려 혼자 일하니 더 절절히 와닿는다.
그렇게 (마음은 추웠지만)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찬 바람이 불 때 쯤에 다시 하나씩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름종이 같이 얇디 얇은 통장 잔고가 A4 평량이 될 때쯤 나는 또 다른 고민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뭐라도 하려던 그 마음이 게으른 나를 밖으로 움직이게 해주고, 계속해서 그리게 해준 것이라 믿는다.
그때 나를 버티게 해준 분들께 다시 감사하다.
좀 일에 치여 너덜해지면 어떤가...너무 좋은데!
다음편엔 번외로 투잡을 하게 된 이야기를 하고
이어서 일러스트레이터가 쓰는 에버노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프리랜서 너굴양의 작업물은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