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시장의 하루
규담아, 쉰세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11월 20일은 네 엄마의 생일이라 진주시 서부시장에 다녀왔단다. 사천은 본래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도시라, 길을 걷다 보면 텅 빈 골목의 공기가 먼저 눈에 들어오곤 하지. 진주도 예전처럼 북적이지는 않아서, 예전엔 밤마다 사람들로 가득했던 시내가 이제는 조용히 숨을 쉬는 정도야.
그런데 시장은 달랐단다.
시장은 언제나 시장답게 살아 있어. 오래된 천막 아래로 김이 오르고, 튀김을 뒤집는 소리와 채소 위에 맺힌 물방울 냄새가 섞여서, 묘하게 오래된 안도감 같은 것을 만들지.
삼천리국수 앞에는 이미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30분쯤 기다렸는데, 그 시간조차 이상하게 따뜻했단다. 우리 바로 앞에 서 있던 가족이 닭강정을 사 와 아이에게 먹여주고 있었는데, 아이 엄마가 닭강정을 이쑤시개로 집어 작은 입에 조심스럽게 넣어주는 모습을 보는데 괜히 마음속이 조용히 풀어지더구나.
시장이라는 공간은 그런 데야. 누군가를 챙기는 손길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곳.
줄이 천천히 앞으로 움직일 때, 맞은편 김밥집 사장님이 분주하게 김밥을 말고 있었어. 국숫집에 김밥이 없어 손님들이 주문하면 김밥집에서 직접 배달을 해주더라. 시장 사람들은 서로 경쟁하기보다, 함께 살아가듯 움직였단다. 아빠는 그 풍경이 좋았어. 작지만 오래된 살아 있음이 느껴졌거든.
드디어 자리에 앉아 네 엄마와 칼제비 두 그릇을 주문했어.
사실 하나면 충분했겠지만,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고 가게에도 미안해서 두 그릇을 시켰단다. 가격은 6,000원. 그런데 맛은 참 좋더라. 미역 향이 은근하게 스며 있는 국물, 멸치의 비린맛 없이 살짝 칼칼한 뒷맛, 쫄깃한 수제비와 힘 있는 면발.
아빠는 많이 먹지 못했지만, 조갯살만 골라 네 엄마 숟가락 위에 올려줬다.
네 엄마는 그 작은 행동에 눈웃음을 지었단다.
요즘 네 엄마는 아빠 때문에 먹고 싶은 것도 많이 참는데, 오늘만큼은 그 웃음이 아빠에게 너무 고마웠어.
어떤 날들은 한 그릇의 따뜻한 국물과, 그 국물 위에 스며 있는 웃음 하나로 충분히 살아지는 날들이 있어.
식당을 나와 시장을 천천히 걸었다.
네 엄마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데, 저녁 햇빛이 오래된 간판과 천막에 금빛으로 흩어졌다. 시장의 분주함 속에서도 사람들의 체온이 느껴졌고, 네 엄마는 작은 상점들을 둘러보며 가끔씩 "다음에 또 오자"며 웃더구나.
아빠는 그 말을 듣고 마음속이 이상하게 따뜻해졌단다.
‘다음에 또’라는 말은, 아직 우리에게 ‘다음 날’이 주어져 있다는 뜻이니까.
다음번에 오면, 아빠도 꼭 국수 한 그릇을 다 비워보고 싶다. 그게 뭐라고, 괜히 마음속에 작은 목표처럼 남아버렸어.
이 날 하루를 돌아보면, 규담아, 이건 단순한 외출이 아니라 아빠가 살아 있음을, 그리고 살아갈 이유를 다시 확인한 하루였단다. 시장의 따뜻한 냄새, 사람들의 움직임, 네 엄마의 웃음, 그리고 네 곁에서 이어지는 이 평범한 일상이 아빠에게는 기적처럼 느껴진다.
병원과 결과와 두려움 사이에서도,
이런 하루가 있다는 것만으로
아빠는 다시 버틸 힘을 얻었단다.
규담이도 시장에 간다면 아빠의
이 하루를 기억해 주면 좋겠다.
너의 아빠는, 이런 보잘것없는 하루에도 마음 깊이 숨을 들이쉰 사람이었다는 걸.
봄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