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쉰네 번째 봄, 4월 3일

누군가의 생일을 기억하는 일

by 네로

규담아, 쉰네 번째 너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오늘은 아빠의 마음에 남아 있던 하루 하나를 너에게 들려주고 싶다.

이건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날은 아니고,

어쩌면 그냥 사람들이 모여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던 저녁일 뿐이야.


그날은 전주 효자동에 있는 시장 골목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어.

머리에 웨이브를 넣은 여사님 한 분이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계셨지.

“그래서 거기서 원 박사님이 딱 그렇게 말씀하셨다니까, 너무하지 않아?”

우리는 이미 이야기의 시작이 아니라 한가운데쯤에 들어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 자리는 늘 그랬거든. 시작이 중요하지 않았고,

누군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지.


가을이 막 깊어지던 무렵이라 가게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바깥공기가 그대로 들어왔어.

바람에는 화약 냄새가 조금 섞여 있었는데,

아마 근처 아이들이 남아 있는 여름을 태우고 있었던 모양이야.

아빠는 그 냄새를 맡으며,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여름이 그렇게 끝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날 우리는 네 명이었어.

남자 둘, 여자 둘.

여사님 두 분은 어머니나 고모뻘이었고,

곰처럼 덩치가 큰 형 하나와, 그때의 아빠.

수요일은 원래 가족의 날이라 야근 없이 집으로 가야 하는 날이었지만,

같은 기관에서 일하던 우리는 어느새 또 다른 가족이 되어 있었지.

술을 마신 사람은 둘 뿐이었고,

여사님들은 잔을 입에만 대는 정도였어.

우리는 술을 마시러 간 게 아니라,

기억을 마시러 간 자리였단다.


“그땐 참 좋았지.”

“그때는 우리가 젊었지.”


그런 말들이 자연스럽게 오갔고,

아빠는 그 말들을 가슴으로 받아 마셨다.

한천이라는 우뭇가사리는 볕에 말리면 김처럼 생기는데

물을 만나면 엄청난 양을 빨아들이지.

그날의 대화도 꼭 그랬어.

기억이라는 물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었거든.


예전처럼 자주 만날 수는 없었다.

우리는 각자 다른 기관으로 옮겼고,

삶의 자리가 조금씩 달라졌기 때문이야.

그래도 한 번 만나면 시간은 늘 빠르게 흘렀다.

세 시간, 네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술은 줄지 않았는데 이야기는 끝날 줄 몰랐지.

우리는 술을 마시지 않고,

지나온 시간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마시고 있었어.


그러다 문득, 이제 이런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한 명 빠져 있다는 걸 느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데도, 아직 모임 날짜를 정하지도 않았는데도,

오늘따라 그 빈자리가 유난히 컸게 느껴지는구나.


소영 고모는 늘 이런 자리에 있었다.

술은 못 마셨지만 웃음을 마셨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주 짧은 말 한마디로 분위기를 정리하곤 했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을 때,

카카오톡 알림 하나가 떴다.

오늘이 고모의 생일이라는 메시지였어.

아빠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기만 했단다.

원래라면 전화를 드렸을 거야.

전주로 내려가 저녁이나 먹자고 했을 거고,

늘 가던 효자동 시장 골목집에 모여

밥과 안주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눴겠지.

물론 고모는 술 대신 웃음만 마셨을 테고.


그런데 어느새 12월이었고,

시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흘러가 버렸더구나.

그날 문득,

이번 생은 너무 빨리 많은 사람을 떠나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정말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늘 대답 없는 곳으로 흘러가지만 말이야.


예전에 아빠의 친구가 혈액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도

비슷한 마음이었단다.

간절한 순간일수록 내 손은 늘 닿지 않았고,

그 무력함이 오래 남아.


아빠는 조혈모세포 이식을 두 번이나 해주었지만,

정작 내 곁의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마음이 지워지지 않았어.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분명히 있었거든.


그래서 그날 밤,

아빠는 마음속으로 고모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모, 생일 축하드려요.”

아무도 연락하지 않았다면,

이 인사는 늦게라도 도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규담아,

생일을 기억하는 일은

결국 이렇게 늦게 도착한 마음을 조심스럽게 내려놓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그 사람이 곁에 없어서,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는 날이 되기도 하고.


아빠가 이 이야기를 너에게 들려주는 이유는

언젠가 네가 누군가의 생일을 떠올릴 때,

그 사람이 곁에 있든 없든

그 마음만은 꼭 놓치지 않았으면 해서란다.

기억하는 일은,

살아 있는 사람과 떠난 사람을

같은 시간 위에 잠시 올려놓는 일이니까.


사랑한다, 규담아.

아빠는 오늘도

잊지 않으려고 이 편지를 쓴다.


봄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