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쉰다섯 번째 봄, 4월 3일

- 이름이라는 옷에 대하여

by 네로

규담아, 쉰다섯 번째 생일을 축하한단다.


이 말을 이렇게 먼 시간에 두고 적는다는 게 아직도 조금 낯설지만,

아빠는 오늘도 너를 부르듯 이 문장을 천천히 써 내려간다.

사람은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 사람을 한 번 더 살아 있게 만든다고 했지.

그래서 아빠는 네 이름을 자주 불러본다. 마음속에서도, 이렇게 글로도.


규담이는 별명이 있니?

누군가는 너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사랑할수록 이름을 바꾸거든.

네가 태어나기 전 그리고 태어났을 때, 한동안 석곡에 계시던 외할머님이 아이를 꼭 품에 안고 싶다 하셔서,

너는 잠시 ‘석곡이’가 되었단다.

태어나고 두 달 동안, 우리는 너를 그렇게 불렀지.

그 이름에는 장소도, 기다림도, 바람도 함께 들어 있었어.


아빠는 참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왔단다.

고등학교와 농촌진흥청에서는 ‘선생님’이었고,

대학교에서는 ‘박사님’이었고,

재단에 와서는 ‘대리’라는 이름을 달고 불렸지.

그 이름들은 모두 역할이었고, 책임이었고, 어쩌면 잠시 빌려 쓴 옷 같은 것들이었어.


얼마 전,

아주 작은 네 입에서 처음으로 “아빠”라는 소리가 나왔을 때,

아빠는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조용히 눈물을 훔쳤단다.

그 이름은 어떤 역할도 아니었고, 어떤 직함도 아니었어.

그저 아빠라는 존재 그 자체를 불러주는 말이었거든.


규담아,

이번 주 화요일부터 아빠의 몸은 다시 좋지 않았단다.

그래서 며칠 동안 너와 떨어져 지내야 했지.

아빠는 늘 괜찮은 척을 잘하는 사람인데,

그 며칠은 괜찮은 척이 잘 되지 않았단다.

너의 숨소리도, 손의 온기도 없는 곳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조용했어.


목요일, 다시 너를 만났을 때

네 손이 아빠의 손에 닿았는데,

그 짧은 접촉이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모른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이

손바닥에서부터 천천히 퍼져 올라왔단다.

아빠는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너를 안고 있었어.


이제 네 아랫니가 돋아나고,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예전보다 네 힘이 훨씬 좋아졌지.

손아귀도 단단해지고, 몸을 비트는 힘도 제법이야.

아빠는 예전처럼 오래 놀아주지는 못했지만,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단다.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너와 같은 공기를 마신다는 것만으로도

아빠의 마음은 충분히 채워졌거든.


네 작은 고모는 그러더라.

아빠는 이틀, 사흘 밥을 안 먹어도 되니까 부럽다고.

살도 자동으로 빠지겠다며 웃었지.

아빠는 그 말에 웃으면서도,

사람마다 버텨야 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단다.

누군가는 밥으로 버티고,

누군가는 말로 버티고,

아빠는 이렇게 너를 떠올리는 것으로 하루를 넘기기도 해.


지금은 12월이란다.

따뜻하다고 불리던 경남도

이제는 영하의 온도로 내려가고,

아침마다 창문과 자동차 유리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아 있어.

아빠에게 겨울은 늘 쉽지 않은 계절이야.

몸도 마음도 더 천천히 움직이게 되고,

지난 시간들이 더 또렷하게 떠오르거든.

그래도 이번 겨울도

잘 넘길 수 있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곧 봄이 올 거란다.

봄이 오면 아빠는

네 손을 잡고 공원을 천천히 걷고 싶어.

아이의 성장은 개성과도 같아서

어떤 아이는 돌이 되기 전부터 걷기도 한다지.

아빠는 네가 언제 걷게 되든 괜찮아.

다만 그 순간을

두 눈으로 보고 싶다는 욕심 하나는 남겨두고 싶구나.

비틀거리며 한 발 내딛는 그 장면을,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그 표정을.


아직 어린 네 앞에서는 나타 낼 수 없지만,

이제 쉰다섯 살이 된 네 앞에서는 아빠가 욕심 하나쯤 나타내도 네가 이해해 주렴.


봄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