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쉰여섯 번째 봄, 4월 3일

- 아빠도 너에게 축하받고 싶어

by 네로

규담아,

쉰여섯 번째 생일을 축하한다.


아빠가 예전부터 너에게 종종 해오던 말이 하나 있지.

중년의 나이가 되어, 어느 날 갑자기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 번쯤은 해보라고.

그 말은 사실, 너에게 건네는 말이면서

동시에 아빠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단다.


오늘 아빠는 너에게 하나의 축하를 받고 싶은 마음으로 이 편지를 쓴다.

그동안 아빠가 혼자 써오던 노트가 있어.

그 노트는 지인들과 직장 동료들이 농담처럼 ‘데스노트’라고 불렀단다.

밖으로 나오지 않아야 할 민감한 이야기들,

말로 하면 다치게 될 감정들,

어딘가에 묻어두지 않으면 안 될 생각들이 잔뜩 들어 있었거든.


계기는 참 사소했어.

유튜브를 보다가, 어째서 영상이 추천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텍스트 포텐셜’이라는 작가가 신춘문예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단다.

아빠는 그 영상을 보면서

서랍 속에 오래 넣어두었던 이야기들이 문득 떠올랐어.

이미 써두고도 다시 펼쳐보지 않았던 문장들,

버리지도 못하고 꺼내지도 못했던 이야기들 말이야.


그래서 그중에서

조금은 괜찮다고 생각했던 기억을 골라

하나씩 컴퓨터로 옮겨 적었단다.

이 일은 네 큰 고모가 많이 애써 주었단다.

아빠도 키보드를 두드리면서도 손이 자주 멈췄고,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여러 번 고민했지.

될 거라고 믿고 보낸 건 아니었어.

다만, 나이가 들어버린 규담이를 제외하고도

혹시 어딘가에는 아빠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줄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가능성 하나 때문이었단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아빠는 두 곳에서 전화를 받았어.

기쁜 마음과 함께, 조금은 얼떨떨한 순간들이었지.

하지만 나중에 연락을 준 한 곳에서는

같은 해, 같은 부문에서의 당선은 규정상 어렵다는 말을 전해주었단다.

아빠는 그 원고를 파쇄해 달라고 부탁했고,

당선자에게 마음속으로 행운을 빌어주었어.

아마도 그분에게는 봄이 조금 더 일찍 찾아 올 것 같더구나.

그림1.png

그리고 아직 심사가 끝나지 않은 곳이 두 곳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곳에도 똑같이 문의를 해봐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심사 전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수고스럽지 않게 먼저 없애는 편이 더 나을 테니까.


원고가 빛을 보지 못하고 갈린다고 해도

그럼에도 이상하게, 아빠 마음은 많이 흔들리지 않았단다.

이미 한 번 세상 밖으로 이야기를 내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빠에게는 충분히 큰 변화였거든.


작년에 아빠가 너에게 말해줬던

여러 이름들 기억하니.

선생님, 박사님, 대리님

그중 하나에

‘작가’라는 이름이 새로 더해졌단다.

이 옷이 아빠에게 잘 맞는지,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다만 입어보지 않았다면

평생 알 수 없었을 옷이라는 것만은 분명하구나.


당선 소식을 듣고 나니

욕심이 하나 더 생기더라.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었어.

아빠가 언젠가 너의 곁을 떠나게 되더라도

책 한 권이 남아 있다면

규담이는 언제든 그 안에서 아빠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브런치에서 아빠를 만나는 것처럼 말이야.


서른다섯의 아빠는 지금도

하고 싶은 게 여전히 많단다.

그리고 쉰여섯이 된 너에게도

그 마음이 아직 남아 있기를 바란다.

혹시라도 다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한 번쯤은 용기를 내보는 건 어떨까.


아빠도,

언제나 너를 응원한단다.


봄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