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02 22:58 일기
그동안 사기업, 정부출연기관, 그리고 지자체 산하 연구기관까지.
총 아홉 곳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제출했다.
그중 전주농생명소재연구원과 순창의 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 두 곳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서류는 무난히 통과했다.
각각 다른 주제로 PPT를 만들었고, 직무수행계획을 발표했다.
미생물의 기능성 소재화, 유용미생물 발굴을 통한 지역 내 식품산업에 기여.
내가 할 수 있는 역할, 그리고 그 재단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준비한 결과였다.
결과는, 불합격.
두 곳 모두.
낙담했다.
사실 내가 연구해온 방향과 꼭 일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농업미생물 분야에서 갈 수 있는 기관이 많지 않았기에 더 아쉬웠다.
사기업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할머니가 눈을 뜨셨다.
의식이 돌아왔다는 말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그리고 아주 단단하게 마음속에 내려앉았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떨결에 “할머니” 하고 할머니를 불러보았다.
어딘가 꿈결처럼 느껴졌다.
할머니는 침대에 누워 계셨다. 눈은 분명히 떠 있었고, 나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손을 잡았다. 어쩌면 그 순간, 모든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손에는 힘이 없었다.
마치 고요한 연못에 손을 담근 듯, 미동 없는 체온만이 전해졌다.
한쪽 팔은 천천히 들어올릴 수 있었지만, 다른 쪽은 여전히 무거운 돌덩이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할머니가 맞는데,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손인데,
왠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가 알고 있던,
그 특유의 농담과 웃음을 지어주던 할머니는 그 자리에 없었다.
나는 조용히 앉아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도 나를 바라보았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마치 서로를 지나쳐 가는 사람들처럼
만나지 못했다.
너무나 슬프면서도, 어딘가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말은 아직 어렵고, 표정도 읽기 힘들었지만 가끔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
감정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했다.
한때는 눈 한 번 마주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으니까.
그래서일까.
불합격이라는 말이 그리 크고 무겁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몸이 아주 오랜만에 가벼웠다.
발걸음이 바람을 닮았고,
코끝에 닿는 공기조차 다정하게 느껴졌다.
길가에 핀 꽃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
모든 것이 나를 조용히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물론 앞으로의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이 순간을 고이 간직하고 싶다.
마치 꿈에서 깨어난 하루.
그리고 그 하루 속, 다시 마주한 할머니의 눈동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
이제는, 다시 누군가를 진심으로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