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맑은 마음 하나

21.12.29 02:46

by 네로

21.12.29. 02:46 일기

“다른 사람이 나로 인해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우선 나부터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요즘 나 자신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는 말이다.
본인이 행복하지 않으면서 다른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그건 마치,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있는 사람에게 누군가의 등을 떠밀라고 말하는 일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먼저, 나부터 챙기기로 했다.
하루에 한 걸음이라도, 나를 위한 방향으로 내딛자고 다짐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 소중하다는 걸 알기에, 더더욱 나 자신부터 돌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금 아쉬운 건 헌혈이다.

나는 헌혈 30회를 넘겼고, 조심스레 50회를 향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병을 앓고 난 이후엔, 아무리 완치가 된다 하더라도 다시는 헌혈을 할 수 없다. 중증환자에게는 그 문이 닫힌다.

모든 게 조금씩 정리가 된다면 후원이 아니라 직접 도울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

후원이 아니라, 언젠가는 다시 직접 몸으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


타인의 손에 의지해 자신의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던 아기처럼 꼭 누군가에게 매달려야만 존재할 수 있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걷고, 손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이제 선택의 여지없이 사랑하고, 봉사하는 방식은 거절한다.

그보다 스스로를 충분히 사랑할 수 있을 때,

그 사랑을 남에게 나눌 수 있을 때,
내가 진짜로 원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때 그때 움직이고 싶다.

그러니까 나는 살아가기로 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는 이미 몇 번이고 아파서 내 사람들을 힘들게 했으니까,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을 힘들게 하지 않기로, 스스로 약속했다.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고, 누군가와 함께여도 괜찮은 삶.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아도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조용히 퇴사를 준비했다.
과서무를 맡고 있는 주사님께 필요한 서류들을 요청했다.
대출은 받을 수 있을지, 퇴직금은 얼마인지 그리고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사실 이직할 회사를 찾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이제는 내가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사무실로 돌아온 내 책상 위엔 조혈모세포은행협회에서 보낸 우편물이 하나 놓여 있었다.

백혈병 환우를 위해 조혈모세포 이식을 해준 사람들에 한해서 보내주는 우편물이었다.
우편물은 달력 한 권, 그리고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공모전 수상작 책자 두 권이 동봉돼 있었다.
나는 무심히 그것들을 책꽂이에 꽂아두고, 그대로 잊었다.

며칠 뒤, 모두가 점심시간으로 자리를 비우고 불 꺼진 사무실에서 나는 그 책자를 꺼내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10페이지, 그리고 12페이지. 수혜자의 가족들이 남긴 글이 눈에 들어왔다.

“공여자님, 생명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은 수혜자나 가족에게 직접 받은 말은 아니다. 코디네이터 선생님이 전달해 준 말이었다. 직접 연락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줄 수 있는 건 마음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보냈다.
아낌없이, 따뜻하게.
40대, 두 아이의 엄마, 급성 백혈병

나보다 조금 앞 선 누군가에게,

숨결을 건네듯 내 마음을 건넸다.

나는 한 걸음 뒤에서 누군가의 생명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도록 행복했다.

나도 모르게 눈구덩이로 손이 갔다.

컵에 한가득 찬 물이 순간 와륵 넘치듯.

그래,

그때 난

가슴이 벅차도록 행복했다.


사실 그 무렵, 나는 너무도 미숙하고 부족한 계약직 연구원이었다.

실수는 반복되었고, 야근은 일상이었고(그건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10개월짜리 계약직이라는 것에 너무나도 일을 가볍게 생각했었다.

10개월짜리 계약직으로 입사했고, 자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었다.

맞지도 않는 길을 걷겠다고 선택했나라고 과거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던 그 시기에 그 말 한마디가 나를 다시 살아가게 했다.


"공여자님, 생명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이 내게, 한 줄기 빛처럼 닿았다.

지금도 그 마음을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


자기 자신에게서 행복을 찾을 수 없는 결여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남들이 보기엔

한심하고,

볼품없고 ,

초라해도,

그 마음, 단 하나가, 차갑고 밝은, 내 보물이었다.


누군가는 행복이 가까이에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행복은 늘 숨어 있는 보물 같다. 멀리 있을 수도 있고, 가까이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운동장에 널려 있는 돌멩이처럼 아무 데나 굴러다니는 게 아니라

찾아야만 만날 수 있는 것.
마치, 분명히 한 짝 더 있을 텐데 늘 못 찾는 양말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물찾기 때처럼 누가 대신 찾아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나 스스로가 찾아야만 한다.


불행하고 불편한 나 자신에게서 행복을 찾으려 하면 그 보물은 찾을 수 없는 것 같다.

그 보물을 너무 찾기 힘들어서 멈추고 싶거나 울고 싶을 때.


"괜찮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그렇니까 안심하기를."

그렇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픈 적이 있어와 지금도 아프다는 것은 정말 많은 차이가 있다.

나는 가끔 절벽을 떠올린다.

그 절벽에서 아래를 바라본 적이 있었다.

약이 맞질 않아서,

음식이 목구멍 아래로 내려가질 않아서,

머리카락과 눈썹이 너무 많이 빠져서,

아파서 새벽에 잠을 이루지 못해서,

손과 발의 색이 변하고 너무나 차가워서,

그 모든 시간들이 너무나 힘들었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힘들지만은 않았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많이 울고, 주저앉고,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만

그 순간들 속에서 분명 많이 웃고, 행복하고, 살아가고 싶었던 적이 더 많았다.

그래서 지금은 그 절벽을 향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내가 아플 때보다 가족들이 아플 때 훨씬 힘들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 절벽 아래를 향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제는 누군가가 혼자서 그 절벽에 서 있지 않기를 바란다.
그 절벽 앞에,

내가 작은 손이라도 내밀 수 있기를 바란다.


고등학생 시절, 아내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손을 다치면 내 손이 되어주고,

내가 발을 다치면 내 발이 되어주고,

내가 귀가 멀게 되면 내 귀가 되어주겠노라고.


17살, 키가 153cm 밖에 되지 않는 여자아이가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었다.

결혼 후 어느 날, 고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을 발견하곤 어디서 이 말을 들어서 내 마음을 흔들었는지 묻기도 했다. 아내는 그 당시 유행하던 소설에서 봤다고 했다.


나는 솔직히 말주변도 없고 글재주가 없어서 자신 있게 그렇게 말해줄 수는 없지만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서 언젠가는 누군가가 잠시 기댈 수 있는 무언가가 되어주고 싶다.


그게 지금, 내가 찾은

나의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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