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맛, 시의 정의

by 네로

브런치스토리에서 작가로 활동하는 약 500명이 모여 있는 오픈카톡방에, A라는 사람이 연어회에 대한 시를 올렸다.


짧고 조용한 시였다. 읽는 동안 접시 위의 빛과, 한때 거슬러 오르던 물길의 기억이 겹쳐 보였다. 그런데 곧 한 사람이 톡을 남겼다. 시라고 명명하며 발표되는 모든 글이 시일 수는 있지만, 타인에게 시로 느껴지기 위해서는 기본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승호와 김기택의 시집을 추천하며 기본부터 공부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A의 시를 읽고 잘 읽었다는 인사를 전하며, 아래의 시 한 편을 남겼다.


<사랑에 맛이 있는가>

연어는 알을 낳기 위해

폭포를 거슬러 오른다 한다


그 방향은 배운 적 없고 묻지도 않는다

유전자에 새겨진 하나의 기억처럼


물살에 몸이 부딪히고 살이 찢겨나가도

연어는 통증보다 먼저 앞을 안다


원초적인 것들은

늘 설명이 없다


가볍게 시작해

끝에서 몸 전체가 남는다


사랑도 그런 맛이 아닐까


혀로는 다 닿지 않고 몸으로 삼켜야 하며

도착한 뒤에는 되돌아올 수 없는 것


때문에 나는,

사랑에 맛이 있는지

아직 모른다


다만 거슬러 오르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감정이

분명히 있다는 것만 안다


그는 곧 다시 말했다. 내 글에는 전환이 필요하고, 텐션이 필요하며, 다른 이야기가 들어가야 설득력이 생긴다고. 이걸 모르면 평생 혼자 일기장만 쓰게 된다는 말을 듣게 될 거라고 했다. 자신이 하는 말은 돈을 주고 들어야 할 조언이라고도 덧붙여 주었다.


몇 사람이 중재에 나섰다. 그리고 나는 사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글에 대한 이론을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시가 아니다’라는 단정 앞에서 의구심이 들었다. 정말 저 사람 말대로 두 시인처럼 쓰지 않으면 시가 아닌 걸까. 나는 인문 계열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글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도 없다. 신춘문예 역시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내가 신춘문예 당선작을 보면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몇 년 더 응모하다 보면 자신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거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당선 소식을 전하자,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거칠었다며 사과를 덧붙였지만, 다시금 신춘문예 당선자가 시를 그렇게 고치면 무례하다고 말했다.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내가 생각해 온 시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애초에 내가 쓴 글을 시라고 한 이유는 단순했다. 누군가 사랑의 맛을 묻는다면, 나는 연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글이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 A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당신의 시를 보고 나도 이런 고민을 했다고, 이렇게 생각해 봤다고 전하고 싶었다.


사랑에는 무게도 맛도 향도 없다. 무게를 달 수도 없고, 씹을 수도 없으며, 향을 맡을 수도 없다. 하지만 나에게 사랑은 자식을 위해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몸부림이다. 돌부리에 살이 찢기고, 내장이 터지고,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동안에도 동료를 발판 삼아 오르는 몸부림. 그것은 위대한 사랑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생각하면 슬픈 맛이 난다. 연어를 입에 넣고 음미할 때도 그렇다. 병원 복도에서 본 풍경들 때문일 것이다. 강북삼성병원과 서울대병원 병동에는 부모를 잃은 자식의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어떤 가족은 건강해진 얼굴로 웃으며 퇴원했고, 어떤 가족은 의사에게 매달리며 울었다. 의사를 붙잡은 손,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쓰는 시였다.


그래서 내 글이 ‘시가 아니라 일기일 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실 부끄러웠다. 그만큼 한심하게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톡방의 분위기를 망쳤다는 점과 별개로, 좋은 글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어릴 적 나는 글을 배우고 싶었다. 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에 가고 싶었다. 글을 쓰는 것이 좋아 그날의 낙엽이나 세 잎 클로버를 꾹 눌러, 내가 쓴 글과 함께 보관하곤 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그것을 보고, 돈 안 되는 직업을 선택하게 할 수 없다며 모두 불태워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아주 작은 노트에만 일기를 썼다. 소중한 보물처럼 나만 볼 수 있는 곳에 꼭꼭 숨겨두고. 지금도 그렇다. 이번에 나는 네 곳의 신춘문예와 윤동주 시문학상에 투고했다. 한 곳의 당선과, 한 곳의 최종심 소식을 들으며 내 글이 아주 엉망은 아니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배워야 할 것은 여전히 많다는 걸 느낀 하루였다.


오늘은 그날의 맛이 났다. 아버지가 내 삶의 종이를 불태우던 날과 같은 맛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