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쉰아홉 번째 봄, 4월 3일

별빛을 찾아서,

by 네로

규담아,

쉰아홉 번째 생일을 축하한다.


아빠는 요즘 겨울의 사이를 걷고 있는 기분이란다.

겨울의 한복판도 아니고, 그렇다고 봄으로 넘어가는 길목도 아닌

그 어중간한 틈에서 말이야.

그곳에서는 바람이 방향을 자주 바꾸고,

발밑의 길도 자주 헷갈린다.


아빠는 그 사이에서 빛나는 별을 찾아 헤매었단다.

어두운 밤에 멀리서 반짝이는 점 하나를 발견하면

그게 별빛인 줄 알고 한참을 걸어갔지.

‘저기까지 가면 뭔가 답이 있지 않을까’,

‘저 빛 아래에서는 조금 덜 외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 빛은 별이 아니라 가로등인 경우가 더 많았단다.

밤을 밝혀주긴 하지만,

하늘의 것이 아니라 땅에 박혀 있는 빛.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면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는 빛 말이야.


그리고 그 가로등 아래에는

수많은 벌레들이 날아들고 있었지.

빛을 향해 맴돌다가,

부딪히고, 떨어지고,

다시 날아오르기를 반복하는 작은 몸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저려왔단다.

저 벌레들은 빛을 선택한 걸까,

아니면 빛에 끌려온 걸까.


규담아,

아빠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혹시 나도 저 벌레들처럼

빛을 향해 날아오다가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건 아닐까 하고.

처음에는 분명 별빛을 찾고 있었는데,

지금 서 있는 자리는 가로등 아래이고,

되돌아가기에는 발자국이 너무 많아진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말이야.


다시 다른 별빛을 찾아 떠나야 할지,

아니면 이 자리에서 잠시 숨을 고를지.

아빠는 그 선택 앞에서

조금 겁이 난단다.

멀리 온 사람일수록

길을 바꾸는 일이 더 어렵더구나.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가로등도 결국은 누군가를 위해 켜진 빛이라는 걸.

별빛만이 유일한 답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어떤 빛은 길을 알려주고,

어떤 빛은 잠시 쉬어가게 하고,

어떤 빛은 그저

“여기까지 잘 왔다”라고 말해주기도 한다는 걸 말이야.


쉰아홉의 규담이는

지금 어떤 빛을 보고 있니.

별빛일까, 가로등일까,

아니면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희미한 불빛일까.

아빠는 네가 어떤 빛 아래에 서 있든

그 선택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겠다.

다만 너무 눈부셔서

자신을 태워버리는 빛이라면

잠시 한 발짝 물러나도 괜찮다는 말은

꼭 해주고 싶구나.


겨울의 사이에서는

길을 잃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란다.

별을 놓쳤다고 해서

밤이 끝난 것도 아니고,

가로등 아래에 섰다고 해서

여정이 실패한 것도 아니다.


아빠는 오늘도

하늘을 올려다본다.

별빛이든, 불빛이든,

그 빛들이 결국

어둠 속에서 길을 찾으려는

누군가의 마음에서 태어난 것임을

알기 때문이야.


봄에,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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