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예순 번째 봄, 4월 3일

- 돌아가야 할 이유에 대하여

by 네로

규담아, 예순 번째 생일을 맞은 너에게 이 이야기를 남긴다.

이건 아빠가 무엇을 이루었는지에 대한 기록도 아니고, 어떻게 고난을 이겨냈는지에 대한 교훈도 아니란다. 다만 아빠가 왜 그렇게 버텼는지, 그리고 지금도 왜 여전히 돌아오려 애쓰고 있는지에 대한, 조금은 길고 느린 고백에 가까워.


아빠의 많은 날들은 사실 특별하지 않았단다. 눈을 뜨면 출근을 했고, 익숙해질 법도 한 서류들을 여전히 낯설게 붙잡은 채 조금은 알 것 같았던 연구를 다시 반복했어. 하루가 끝나면 그것이 정말 나의 하루였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곤 했단다. 그렇게 흘러가던 시간들 속에서 어느 날 문득, 아주 조용하지만 분명한 생각 하나가 들었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누군가가 디자인한 연구가 아니라 ‘나만의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 그 생각은 욕심이라기보다는 이 삶을 끝까지 붙잡고 서 있게 해 줄 마지막 기둥처럼 느껴졌단다.


그래서 아빠는 연차를 쪼개 대학원 수업을 들었고,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른 채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어. 씻고 나와 시계를 보면 늘 자정이었고, 잠깐 눈을 붙이면 다시 다음 날이 시작되었단다. 몸이 먼저 무너질 거라는 건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그땐 다들 그렇게 사는 것처럼 보였고, 우리도 괜찮을 거라고, 지금만 지나면 조금 나아질 거라고 믿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엄마에게 “속이 좀 안 좋은 것 같아”라고 말했단다. 엄마는 말없이 소화제를 건넸고, 며칠이 지나도 낫지 않자 조심스럽게 “병원에 가보자”라고 했단다. 그 말을, 그때 들었어야 했어. 그날 바로 같이 병원에 갔어야 했어. 시간은 늘 그렇게 지나간 뒤에야 중요한 순간으로 남는다는 걸, 그때서야 알게 되었단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자책했단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말했더라면, 그날 같이 갔어야 했는데, 혹시 내가 너무 무심했던 건 아닐까, 그런 말들을 혼잣말처럼 되뇌었단다. 아빠는 괜찮다고, 그건 엄마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말이라는 것이 언제나 마음까지 닿지는 않는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어. 아빠가 잠든 밤이면 엄마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고, 혹시라도 내가 뒤척일까 봐 숨을 죽인 채 곁을 지켰단다.


아빠 역시 엄마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애썼어. 가능한 병원 진료는 혼자 다녔고, 엄마는 서울에서 전주로 내려오는 버스터미널에서 아빠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지. 그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아빠는 도무지 무너질 수가 없었단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마다 터미널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었을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야. 그때마다 아빠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나는 돌아가야 할 사람이다. 내가 반드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


2017년부터 2022년 봄까지, 그리고 다시 2022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아빠는 또다시 환자가 되었단다. 조금 더 나은 회사를 알아볼까 고민도 했지만, 좋은 회사에 가려면 신체검사를 통과해야 했고, 그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단다. “조금만 더 나아지면...”이라는 말은 늘 아빠에게서 멀어졌고, 기다림은 생각보다 훨씬 길어졌어. 그래도 여전히 일하고 싶었고, 어딘가에 내 자리를 만들고, 내 이름을 건 무언가를 해내고 싶었거든. 하지만 현실은 늘 아빠게에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아직은 멈춰 있으라고.


병원 대기실에 앉아 흐릿한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보다 보면, 아빠는 자주 이런 생각을 했단다. 이 기다림은 언제쯤 끝이 날까 하고. 그리고 엄마에게도 말하지 못한 두려움이 문득 밀려오기도 했지. 혹시라도 내가 이 기다림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단다. 어쩌면 이 고요하고 느린 시간 속에서 나 혼자만 멈춰 서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세상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삶 자체가 이미 고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도 함께. 그래서 아빠는 “힘내세요”라는 말을 함부로 꺼내지 않게 되었어. 어떤 말은 위로가 아니라 저주처럼 가슴에 박히기도 하니까 말이야.


그 시절 아빠에게는 터미널에서 기다리던 엄마가 있었고, 어느 날엔 그보다 더 작고 분명한 이유 하나가 생겼지. 자그마한 손, 작은 눈망울, 온 세상의 가능성을 품은 아이.

바로 규담이 네 얘기야.


어느 날 엄마가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려주었을 때, 그 작고 또렷한 ‘쿵쿵쿵’ 하는 울림만으로도 아빠는 다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얻었단다.


그래서 아빠는 또다시 버스에 올랐어. 서울로 향하는 길 위에서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바라보며, 내가 돌아가야 할 사람들을 하나씩 떠올리면서. 기꺼이, 기꺼이 돌아오기 위해서 말이야.


규담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어쩌면 아주 단순한 거란다. 돌아가서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말이야.


그렇지 않니?


2025년 12월 31일.

영원한 봄날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