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스물아홉 번째 봄, 4월 3일

속이 빈 약속, 그리고 지켜야 할 것에 대하여

by 네로

규담아, 스물아홉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아빠가 스물아홉이었을 때, 처음으로 정부기관도, 정부출연연구소도 아닌 사기업이라는 곳에 발을 들였단다.

그 회사는 ‘농업회사법인’이었고, 충남 논산시 연무읍에 있었어. 사무실만 해도 여러 곳에 있었고, 공장도 두 군데 이상, 다른 지역에는 대리점도 있었지.

처음 제안받았던 급여는 기본급만 월 300만 원이었어 이것저것 수당을 합친다면 380~450만 원을 이야기 했단다(월급 체납 후 두 달이 지나고, 사장님이 아빠가 날인한 계약서가 아닌 본인이 250만 원으로 작성한 계약서로 아빠의 월급을 깎아놨더라).

그전까지 아빠가 농촌진흥청에서 받았던 급여가 250만 원 정도였으니, 솔직히 혹했단다. 거기다 복지도 많다고 하니, “이번에는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어.


아빠의 직책은 ‘기업 부설연구소 계장’이었어. 위로는 연구소장님이 계셨고, 아래로는 연구원 3명이 있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세 명은 아빠가 있는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장님의 친척이나 자녀들이었지.

연구실은 농촌진흥청에서 쓰던 곳보다 세 배는 넓었고, 장비도 꽤 괜찮았어. 하지만 실험에 필요한 소모품이 하나도 없었단다.

구매 요청을 했더니, “돈이 없어서 못 한다”는 답이 돌아왔어. 심지어는 “일단 김계장 네 돈으로 사서 하라”는 말까지 했지. 결국 아빠는 약 200만 원을 내 돈으로 들여서 실험 준비를 했단다.


전주에서 논산까지 아빠는 매일 새벽 5시 40분에 출발해서 6시 30분 전에 도착했어.

연구소 직원이었지만, 연구보다는 공장에서 제품 포장을 하고, 영업을 다니고, 보조사업을 따러 다니는 게 대부분이었단다.

입사한 지 1주 차에는 경리 직원이 사장님의 갑질 때문에 퇴사했고, 3주가 되기도 전에 열심히 해보자던 연구소장님도 회사를 떠났어. 더 놀라운 건, 그 소장님은 애초에 직원으로 신고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는 거야.


급여는 제때 들어오지 않았고, 심지어 회사가 내야 하는 4대 보험도 단 한 번도 납부되지 않았어.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빠의 4대 보험 체납 기록은 그대로 남아 있단다.

지금도 그 회사는 여전히 없어지지 않았지만, 건물은 압류당했고, 국세와 4대 보험도 체납 상태란다.

사장님은 직원들 급여는 주지 않으면서, 새로 리스한 제네시스 G80을 타고 다녔고 식당밥값을 지불할 먹을 돈이 없어서 직원들한테 빌리기도 하면서 지내고 계셔.


아빠는 그곳에서 딱 3개월을 버티고, 결국 다시 농촌진흥청으로 돌아갔어.

그 당시 사장님은 가장 잘 팔리는 회사의 미생물제품 2개에서 미생물을 분리해서 우리 제품에 넣자고 했고, 아빠는 거절했단다. 마찬가지로 경리가 없어져서 아빠가 그 일까지 도맡아서 할 때, 이중장부 작성도 요청했었지.


호되게 사기업의 현실을 맛본 뒤였지만, 덕분에 깨달은 게 있었단다.

세상에는 화려하게 포장된 약속이 있지만, 그 안이 텅 비어 있는 경우도 많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힘들더라도 내 양심과 이름은 지켜야 한다는 것 말이야.


그때 우리 가정은 솔직히 많이 힘들었어.

만약 네 엄마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 살림살이는 정말 곤란했을 거야.

아빠 월급이 밀리고, 4대 보험도 안 들어오고,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했으니까.

그래서 아빠는 그 시기에 더 절실하게 느꼈단다.

사람이 일터를 고를 때는 ‘돈’보다도 신뢰할 수 있는 환경, 함께 버틸 수 있는 동료, 그리고 가족의 안전이 먼저라는 것을.


규담아,

너도 언젠가 새로운 곳에 발을 들이게 될 거야.

그때 아빠가 했던 실수도, 배운 것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조건이 좋아 보여도, 겉만 번지르르해 보여도, 그 안이 어떤 사람들로, 어떤 마음으로 채워져 있는지 꼭 살펴보렴.

그리고 네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는, 부끄러워하지 말고 용기 있게 그 자리를 떠나도 괜찮단다.

왜냐하면, 네 삶을 지켜줄 사람은 결국 너 자신이고, 네 곁을 끝까지 지켜줄 사람은 가족이니까.


아빠는 그걸 스물아홉에야 제대로 배웠단다.

그리고 지금 이 편지를 쓰는 이 순간에도, 네가 어떤 길을 가든 그 길이 안전하고, 네 마음이 다치지 않길, 늘 기도하고 있단다.


그리고 규담아,

아빠가 스물아홉에 겪었던 그 시간들은, 겉으로 보면 실패처럼 보일지도 몰라.

하지만 아빠는 이제 안다. 그 모든 순간이 없었다면, 아빠는 지금처럼 사람을 볼 때 마음부터 먼저 살피는 눈을 갖지 못했을 거야.

언젠가 네 앞에도 잘 포장된 기회가 찾아올 거고, 또 그 속이 텅 빈 껍데기일 수도 있단다.

그럴 땐 아빠의 이야기를 떠올려라.

돈보다,

명함보다,

자리가 주는 화려함보다 더 중요한 건 네 마음이 안전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곳이라는 걸.

아빠는 그걸 몰라서 시행착오를 겪었단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 속에서도, 네 엄마라는 이유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단다.


그러니 기억하렴, 규담아.

세상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든, 네 가족과 네 마음만큼은 절대 팔지 말아야 한다는 걸.

그게 아빠가 너에게 주고 싶은 가장 큰 유산이다.


봄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