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스물여덟 번째 봄, 4월 3일

태양 아래에서, 흙과 땀으로 보낸 두 계절

by 네로

사랑하는 규담아,

스물여덟 번째 생일을 축하한다.


스물여덟의 너는 어떤 모습일까.

눈빛은 더 단단해졌을까?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든,

이 편지가 너에게 한줄기 그늘이 되어주길 바란다.


아빠는 스물여덟에 석사 과정을 마무리하고,

같은 기관인 농촌진흥청에서 전문연구원으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단다.


그 당시 아빠는

새만금 간척지 같은 환경에서 미생물을 활용해 작물을 안정적으로 재배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어.


그 연구는 책상 앞에서 끝나는 게 아니었단다.

뜨거운 태양 아래, 잡초를 일일이 뽑고,

땅을 고르고, 비료를 뿌리며 직접 밭을 일궜지.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그늘 하나 없는 드넓은 간척지에서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땀을 흘렀어.

어느 날에는 연구사님이 쓰러지지 말라며 포도당 사탕을 사주셨을 정도였어.


혹시 궁금할지도 모르겠구나.

“아빠는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하고.


실험을 하려면 조건을 맞춰야 했거든.

제대로 된 결과를 얻으려면

환경을 통제하고, 변수들을 줄이고,

실험 면적까지 정확히 계산해서

이랑을 만들고 씨를 뿌려야 했단다.


그렇게 공들인 실험에서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어.

어느 날, 새벽에 출근해 보니

멧돼지 가족이 아빠가 재배한 콩과 옥수수를

하룻밤 사이에 다 먹어치운 거야.


정말 허탈했단다.

두 계절을 정성껏 들인 실험이

하룻밤 사이에 사라져 버리니,

마치 몇 달치 노력을 바람에 흩날린 듯한 기분이었지.


그때 문득

초등학교에서 ‘반달가슴곰을 마주쳤을 때의 대처법’을

배웠던 게 떠올랐어(아빠는 지리산 자락 출신이니까).

“멧돼지 대처법도 배워둘걸...” 하고 말이야.

다행히 다른 시험구에서 얻은 데이터를 활용해 논문이나 보고서는 제출할 수 있었단다.


그 두 계절은

실패와 좌절, 인내와 성실이라는 단어들이

매일같이 내 어깨에 걸쳐졌던 시간이었어.

지금도 아빠는 그 계절을 떠올릴 때마다

삶에서 가장 땀 냄새나는 계절이었다고 말한단다.


엄마도 마찬가지란다.

그 무렵,

너의 엄마는 전북농업기술원에서

스마트팜(시설원예)을 연구하고 있었지.


엄마는 주로 딸기를 연구했어.

어떤 지역에서, 어떤 작업환경에서 재배했을 때

딸기의 품질과 수확량이 올라가는지

그걸 분석하고 개선하는 일 말이야.


엄마는 장롱면허였기 때문에

전주에서 익산까지 농업기술원의 셔틀버스를 타고 다녔고,

출장도 많았단다.

다른 연구원들과 함께 농가를 다니는 일이 많았는데,

아빠는 그게 조금 샘이 나기도 했어.

하하, 지금 생각하면 귀엽고도 부끄러운 감정이지.


그렇게 서로 땀 흘리며 일하고,

서로의 수고를 알아주는 나날들이

참 고마웠던 시절이었어.


그 시절의 엄마와 아빠는

성공보다 실패를 더 많이 배웠고,

쉬움보다는 불합리를 더 많이 겪었지만,

그래도 그 과정을 통과하면서 조금씩 사람다워졌단다.


규담아,

혹시 너도 지금 땀 흘리고 있니?

밭에서가 아니더라도

네가 마주한 현실이라는 들판에서

혼자만의 이랑을 만들고, 잡초를 뽑고 있진 않을까?


혹은 뭔가에 쏟아부은 노력이

멧돼지처럼 갑자기 와서

모두 휩쓸고 간 것 같은 기분일 수도 있겠다.


아빠는 그 감정이 얼마나 허무하고

화나고, 슬플 수 있는지 알아.

하지만 그 경험이

훗날 너의 밭에 더 깊고 단단한 뿌리를 내릴 거야.


그래서 말해주고 싶어.

실패는 ‘그때 실패’ 일뿐이고,

시간이 지나면 그건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은 너의 무기가 된다는 걸.


스물여덟의 너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무엇보다 기억하렴.

엄마와 아빠는 언제나 네 가장 든든한 실험 파트너였다는 걸.

세상에 데이터를 제출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항상 너의 곁에 있을 거야.


세상이 끝나버릴 만큼 힘이 들 때라면,

언제든 돌아오렴,

엄마와 아빠의 연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단다.


봄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