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피기 전, 달빛 아래서
규담아, 서른두 번째 생일을 축하한다.
이날은 아빠가 서른두 살이었을 때 겪었던 일들을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날이구나.
이맘때 아빠의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갔다. 교통사고로 아빠와 함께 병원에 있었던 가족들은 이제 퇴원해 통원치료를 받으셨지만, 아버지는 중추신경계에 이상이 남아 회복까지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무엇보다도 아빠 마음을 가장 무겁게 했던 건 할머니의 상태였다. 할머니는 말씀도 잃으시고, 몸조차 가누지 못하실 만큼 퇴화해 버리셨다. 이제는 개인 간병인께서 곁을 지켜드리고 계셨단다.
그 무렵 아빠는 사천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지. 큰 기관에서만 일하다가 단 일곱 명만 있는 작은 기관에 들어가니 모든 게 달랐어. 실험대조차 없는 간이실험실을 처음부터 세팅해 미생물을 분리하고, 분석하고, 특허출원까지 이어가면서도, 볼펜 한 자루를 사기 위해 네 번의 결재를 올려야 하는 행정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곤 했다. 인간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버거웠고, 결국 곪아 있던 문제가 터지면서 아빠도 그 안에 휘말려 버렸다. 원인 제공자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아빠에게 더 큰 책임을 씌웠다. 그때 아빠는 처음으로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했고, 하루하루를 약에 기대며 살아냈단다.
트리렙탈, 알프람, 파록세씨알… 이름도 길고 낯선 약들이었지만, 그 덕분에 아빠는 무너져 내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농촌진흥청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이 찾아와 주고, 아빠를 걱정해 주며 손을 내밀어 주었기에 겨우겨우 숨을 이어갔다. 그렇게 6개월이 흘러, 일이 조금 익숙해질 무렵, 아빠는 다시 두통과 어지럼증, 구토에 시달렸다. 작은 도시라 신경과 선생님을 바로 만날 수도 없었지. 몇 번의 진료와 처방 끝에, 결국 CT와 MRI를 찍었고, 의사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머릿속에 종양이 있습니다. 뇌종양입니다.”
순간,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위암 진단에 이어 이번에는 뇌종양이라니.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숨조차 막혔다. 회사에서는 전화가 쏟아지고 있었고, 삶은 여전히 흘러가야 했지만, 아빠는 벚꽃이 아직 피지 않은 수양공원을 네 엄마와 함께 걸으며, 물기 어린 봄의 냄새 속에서 이런 바람을 품었다.
“아주 만약에, 언젠가 내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고 내 모습이 보이지 않더라도, 아내가 신기하게라도 나를 느낄 수 있기를. 아내의 삶 안에서 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곁에 머물고 있다는 답을 얻을 수 있기를.”
그날 밤, 달빛이 새하얗게 내려앉은 창가에서 아빠는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니까.
규담아,
아빠는 그 시절, 다시 한번 삶이 얼마나 덧없이 무너질 수 있는지 알게 되었고, 동시에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강인해질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너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네가 살아가는 길 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 큰 축복일 거다. 그러나 혹여 모종의 이유로 그렇지 못했다 하더라도, 아빠는 그것을 이해하고, 또 존중한다. 결혼은 삶을 완성하는 조건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모습일 뿐이니까.
사람은 누구와 함께 있든, 혹은 홀로 있든, 자신의 길을 고민하고, 선택하고, 걸어간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존귀한 존재다. 중요한 건 배우자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네가 네 삶 속에서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는 거란다.
친구와, 가족과, 혹은 네가 사랑하는 일과 함께 서로를 지탱하며 살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아빠는 믿는다.
아빠는 단지 네가 네 삶을 돌아볼 때,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라
“그래도 내 삶은 사랑이었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네가 서른두 살이 되어 이 편지를 읽는 날에도, 아빠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기도할 거야. 네 삶이 사랑으로 가득하기를.
사랑한다,
봄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