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서른한 번째 봄, 4월 3일

기다림은 때로 기적을 데려온단다.

by 네로

규담아, 서른한 번째 생일을 축하해.


오늘은 아빠가 조금 긴 이야기를 해주고 싶구나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너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아빠의 삶의 조각들이야.

서른한 살 때의 아빠는 여러 번 이력서를 썼단다. 한 장 두 장, 글자를 눌러쓰면서 마음도 함께 눌러 담았지. 전주에서, 순창에서 면접을 보고, 발표를 하고, 연구계획(직무계획)을 발표했단다. 미생물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작은 세포 하나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를 말이야.

하지만 돌아온 건 두 번의 불합격 통보였다. 차갑고 단단한 벽에 부딪힌 듯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절망만이 남지 않았단다. 바로 그즈음, 할머니께서 오랜 잠에서 눈을 뜨셨기 때문이지.


그 순간은 기적이었어. 손을 잡아도 힘은 없었고,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눈동자 속에는 분명히 아빠가 담겨 있었어. 그 눈빛 하나로 충분했단다. 두 번의 불합격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 햇살이 더 따뜻했고, 길가의 꽃들이 더 선명했으며, 바람마저 다정했지.


하지만 삶은 언제나 한쪽은 기적이고, 다른 한쪽은 고통이더라. 할머니는 다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고, 목 아래로는 감각이 사라지셨어. 간병인을 모셔야 했고, 시간이 흐르며 치매도 찾아와 결국 아빠를 알아보지 못하시게 되었지. 그래도 아빠는 늘 손을 잡았다. 아주 잠깐이라도 예전의 미소가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해 6월, 아빠는 농촌진흥청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게 되었단다. 대학 시절 단기 계약직으로 시작해 긴 세월을 묵묵히 버텼지만, 결국 아빠의 이름은 어디에도 남지 않았단다. 퇴직을 앞두고 경남 사천의 공공기관에 합격해 홀로 내려가 있었고, 몸무게는 8kg이나 빠져 있었다. 스스로 괜찮다고 믿었지만, 거울 속 얼굴은 그렇지 않았어.


아빠는 때로 분노했고, 지쳐서 엄마에게 날카로운 말을 하기도 했다. 엄마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깁스를 했을 때, 위로보다 먼저 “왜 조심하지 않았냐”는 말이 튀어나왔지. 그 말이 엄마의 등을 얼마나 차갑게 만들었는지 알면서도, 후회는 너무 늦게 찾아왔다. 아빠는 그 기억을 부끄럽게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 날, 청주지검에서 가해자를 처음 마주했어. 수없이 준비한 말들이 있었지만, 결국 아빠는 이렇게만 말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왜 그런 사고를 냈냐고 묻지 않았단다. 그것은 그 사람의 몫이었으니까. 아빠는 억울해하지 않기로 했다. 억울함은 종종 삶을 잠식하게 된단다.


암을 마주했을 때도, 장인어른을 사고로 떠나보냈을 때도, 교통사고로 온 가족이 병실에 누워 있었을 때도 아빠는 결국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옥상 끝에서 바람에 휘청이던 날도, 차가운 병원 복도에서 네 시간 넘게 검사지휘서를 기다리던 날도, 인터넷 기사에 달린 악플을 보며 손톱을 물어뜯던 날도, 아빠는 기다리며 버텼어.


기다림은 고통스러웠지만, 기적은 언제나 그 기다림 끝에서 찾아왔어. 딸기가 붉게 물들기를 기다리던 어린 날의 봄처럼, 합격 발표 게시판 앞에서 떨리던 청춘의 순간처럼, 엄마와 결혼식 날 문이 열리길 기다리던 순간처럼 말이다.


규담아, 삶은 빛과 그림자가 함께 온단다. 빛은 삶이고, 그림자는 아픔이야. 아픔은 겹치고 겹쳐서 결국 사람을 단단하게 묶는어준단다. 그래서 아빠는 완전한 사람은 아니지만,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 누군가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함께 울어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어.


규담아, 기억해라. 비극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기쁨도 예고 없이 우리에게 다가와.

한 사람의 슬픔의 깊이는, 결국 그 사람이 웃을 수 있는 행복의 높이와 같다는 걸 아빠는 서른 한 살에 깨달았어.


아빠는 너에게 바란다. 네가 살아가면서 아픔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껴안으며 더 따뜻한 사람으로 자라주기를. 네 웃는 얼굴은 그 모든 아픔을 이겨낼 이유가 되니까.


사랑한다,

봄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