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서른여덟 번째 봄, 4월 3일

너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

by 네로

규담아,

네가 이 편지를 읽을 즈음이면 아마 회사에서 꽤 많은 일을 하고 있겠구나.

책임도 늘고, 사람 사이에서 조율해야 할 일도 많고,

어쩌면 네 마음속에도 피곤함이 겹겹이 쌓여 있을지도 모르겠어.

아빠도 그랬단다.


아빠는 공직자로 일했어.

연구 업무를 맡고 있었지만, 연구만 하면 되는 자리가 아니었단다.

예산을 따내기 위해 시의회와 시청을 오가야 했고,

직접 민원인들을 만나야 하는 일도 많았지.


대부분은 좋은 분들이었어.

하지만 가끔은, 아니 꽤 자주

“내가 누구누구 아는 사람인데”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분들도 있었단다.

“세금 축내는 쓸모없는 밥버러지들”이라는 말도 들었어.

시의회에선 “기관을 없애야 한다”거나

“채용 비리 아니냐, 다 잘라야 한다”라는 말까지도(사실 말도 안 된단다. 채용 용역을 통해 블라인드로 채용해서 시에서 누굴 합격시켜 주고 하는 게 불가능했거든).

아빠는 작은 기관에서, 그저 맡은 일을 묵묵히 하고 있었을 뿐인데 말이야.


사실 아빠가 열심히 해온 것들이 있었어.

아빠가 있는 경남 사천시에는, 간척지가 많단다.

때문에 가끔 가물게 되면 토양 아래쪽의 염분이 올라와서 많은 작물들이 죽게 돼.

실제로 2017년도에 큰 피해를 입었었지.

그래서 아빠는 지역에 있는 토착미생물을 발굴했어.


이런 염분이 올라와도 작물이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미생물을 말이야.

지역에 있는 많지는 않지만 150명이 넘는 농업인들에게 미생물을 나눠줬고,

18개 시군에서 관련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단다.

하지만 비판하려는 게 아니라 비난하려고 오는 사람들에겐

그런 이야기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어.

아무리 설명해도, 그 사람들의 마음은 닫혀 있었거든.


그래서 힘든 날이 많았단다. 그만둘까, 생각한 적도 있었어.

아빠는 이런 환경에서는 일해본적이 없었단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눈먼 돈이니까, 대충 하자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

아빤 그런 게 싫더구나.


그래서 인적, 물적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더라도,

아빠의 인맥을 통해서, 지인들에게 부탁을 해서라도 예산을 최대한 아껴가면서 열심히 일했는데

돌아온 건 무능하고 필요 없는 존재라고 손가락을 하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단다.

사실 이것도 굉장히 둘러서 표현한 거야.


하지만 결국 멈추지 않았어. 3년 동안은 잘 버티고 있단다.

아빠가 버틴 이유는 단순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그들의 말이

결코 진실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어.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너였단다.

아빠는 네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어.

무너지고 싶을 때, 누군가를 붙잡아야 할 때

네 마음속 어딘가에서 아빠가 작은 힘이라도 되어주고 싶었어.


규담아,

혹시 네가 지금, 비슷한 마음을 겪고 있니?

열심히 하는데도 몰라주는 상사,

의견이 통하지 않는 동료,

너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조차

때로는 상처받는 순간들이 있겠구나.


아빠도 그랬어.

오늘도 네 엄마와 조금 말다툼을 했거든.

엄마는 아빠에게 심한 말을 했고,

아빠는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단다.

그래서 몰래 복수를 했지(엄마는 아빠의 마음이 간장종지라고 말한단다).

잠든 엄마의 코에 휴지를 돌돌 말아 콕콕하고 건드렸어.

그리고 엄마 옆에서 휴대폰으로 모기 소리를 작게 틀어놨단다.

아빠의 소심한 복수는 거기까지였어.


규담아, 이런 작은 장난은 아빠가 허락해 줄게.

너도 마음이 지칠 땐, 이런 식으로라도 마음을 풀어도 좋아.

그만큼 상처받은 네 마음을 소중히 보살피라는 뜻이란다.


혹시라도 버겁다고 느껴지는 날이 오면 기억해.


완벽한 어른은 없어.

다만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있고,

상처받아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야.


규담아,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누군가 몰라줘도, 그걸 아는 네 스스로가 있으니까.

그리고 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란 걸 잊지 마렴.


사랑한다, 규담아.


봄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