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손, 긴 시간
규담아,
서른아홉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오늘 너는 하루 종일 엄마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이나 잡아당기며 놀다가,
엄마의 머리카락을 뽑아버리고 말았단다.
결국 엄마의 눈썹이 살짝 올라가자
아빠가 “혼내겠다”면서 너를 안고 거실로 나왔지.
근데 알잖아, 아빠는 혼내지 못했어.
“잘했어” 하면서 네 작은 머리를 쓰다듬어 줬단다.
그 순간, 네 손에 쥐어진 한 움큼의 머리카락을 보며(물론 아빠의 머리카락이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단다.)
어쩐지 웃음과 함께 이상하게도 긴 시간의 그림자가 겹쳐 보였어.
아직 네 작은 손가락은 세상의 모서리를 잡기에도 벅차 보이는데,
언젠가는 그 손으로 더 넓은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가겠지.
그리고 네가 서른아홉이 되는 날,
아빠보다도 훨씬 많은 시간과 무게를 안은 네가
이 편지를 읽고 있을 거라 상상하니
조금 낯설고, 또 묘하게 벅찬 기분이 들어.
규담아,
그 나이가 되면 회사에서 네 이름을 불러대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위에서는 압박이, 아래에서는 기대가, 옆에서는 협력이 필요하다고 손을 내밀겠지.
그때 네가 얼마나 애쓰며 하루를 살아내는지
아빠는 굳이 보지 않아도 안다.
왜냐하면 아빠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거든.
하지만 말해주고 싶어.
세상이 몰라줘도 괜찮다고.
성과로만 사람을 재단하는 목소리들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네가 걸어온 길, 네가 사랑한 사람들,
네가 껴안은 시간들 속에서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다고.
혹시 네가 지금,
버거운 책임 속에서 잠깐 쉬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더라도
너 자신을 잊지 마라.
더 멀리, 더 높이 가는 것보다
스스로를 먼저 돌보고 사랑하는 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란다.
언젠가 우리가 둘 다 나이를 더 먹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날이 오면
아빠는 네게 묻지 않을 거야.
“무엇을 이뤘니?”
“어떤 자리를 가졌니?”
그건 중요하지 않아.
대신 이렇게 말하고 싶어.
“규담아, 잘 살아줘서 고맙다.”
“네가 걸어온 날들이 모두 네가 빛나는 이유야.”
지금은 네 손이 아직 엄마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지만,
언젠가 그 손으로 스스로의 세상을 지탱할 날이 오겠지.
그날에도 기억해라, 규담아.
아빠는 네가 자라는 오늘을
이토록 깊이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었다는 걸.
사랑한다, 규담아.
아빠는 늘 너의 작은 손을, 그리고 긴 시간을 지켜본단다.
봄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