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도, 멈춤도 품은 말
네가 마흔두 번째 봄을 맞는 오늘, 아빠는 마흔한 번째 너에게 했던 이야기를 이어서 나누고 싶구나.
앞서 쓴 편지들에서 아빠는 멈춤과 흉터와 ‘다시 한번 생각하라’는 말을 전했지.
지금 너에게 더 솔직하게 말하려는 건, 아빠 인생에서 왜 가장 어두웠던 시간이 십 대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란다. 그 시간이 어떻게 지금의 아빠를 만들었는지, 그래서 네게 어떤 마음으로 이 말을 건네는지 이해해 주길 바란다.
아빠는 고등학생 되기 전까지 지리산 자락에서 살았어.
그 풍경과 냄새와 사람들은 아직도 아빠의 살과 뼛속에 있다.
그때 만난 친구들 —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함께 자란 얼굴들 — 은 지금도 친구란다.
부모님들끼리도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고, 우리 동네는 서로의 숨결을 아는 곳이었다.
그래서 아빠는 늘 그곳에 속해 있다고 생각했지. 집과 친구와 길이 하나로 이어지는 평온함 속에서 자랐단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고,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모든 풍경이 조금씩 달라졌어.
낯선 사람들, 새로운 규칙들, 밤의 정적 속에서 튀어나오는 말들과 시선들.
어느 밤, 같은 방 친구가 “편부”라는 말을 꺼냈을 때부터 시작되었지.
아빠가 생각하기에,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과 같을 거라고 생각했단다.
아빠는 아빠의 청력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
그 말들이 모이고 퍼지며, 곁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지며 아빠에 대한 ‘다른 눈’이 만들어졌어.
아빠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소리를 잘 놓치고,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말할 때 끼어들기 어렵고, 입술을 읽어야 겨우 알아들을 때가 많단다.
그건 약점이 아니라 아빠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했던 거지.
우리 집은 못 사는 집이 아니었고, 돈 때문에 굶은 적도 없었지만, 그건 사람들 앞에서 중요한 정보가 아니더구나.
오히려 누군가는 그 약점을 권력처럼 휘두르기도 했고, 누군가는 툭 내뱉는 말로 상처를 주었어.
어느 날,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친구(정신지체 3급이라고 나온 친구지) 중 하나가 아빠에게 와서 “걔네한테 잘해주지 말라, 나쁜 애들이야” 하고 말했을 때, 그 말의 파장은 깊었단다.
어느 날 그 친구들끼리 이야기하는 걸 우연히 아빠가 듣게 되었단다.
그리고 아빠는 따졌지.
그리고 다툼이 일어났어.
당사자인 그 친구는 화를 주체하지 못했는지, 자신의 어머니한테 말을 전달을 했나 봐.
부모님들끼리 연락하는 사이였으니 더 크게 번졌단다.
네 할머니는 별개로 작은 일(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했던 일 같은) 때문에 연락을 했다가 아들 간수나 잘하라는 그런 말을 들었으니 마음이 복잡했을 거야.
아빠가 동급생에게 그런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부모님이 알았을 때,
그 순간의 시선이 얼마나 날카롭고 무거웠는지, 규담아, 아빠는 아직도 기억해.
교실 뒤에서 들려오던 속삭임, 복도에서 느껴지던 따가운 눈빛들,
‘귀머거리’, ‘장애인’이라는 말이 순화된 형태로라도 입 밖으로 흘러나올 때 보다,
부모님의 그 시선에 아빠는 가슴에 칼끝을 맞는 것처럼 아팠단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무너져 내리고 있었어.
사실 아빠는 괜찮았거든.
가족들만 모르면.
밖에서 무슨 일을 당해도, 집의 사람들이 모르면 그것으로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법.
집은 아빠의 마지막 보루였고, 집에서 가족들이 평온하면 그걸로 버텨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날 이후로 아빠는 마음속에 조용한 결심 하나를 품었어.
누군가가 아빠를 향해 던진 말들이 날카롭더라도, 집에서는 그 말이 닿지 못하게 하자고.
네 엄마가, 너와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아빠를 볼 때 상처받지 않게, 아빠는 꾹 삼키고 웃는 법을 배웠단다.
민원인이 멱살을 잡아도, 모욕을 들어도, 무릎을 꿇을 것 같은 순간이 와도—
그 모든 굴욕을 가족의 눈앞에서 보이지 않게 감추려고 애썼어.
그게 아빠의 부끄러움이기도 했고, 동시에 자존심을 지키는 방식이었지.
아빠가 십 대의 그 시간들을 떠올리는 이유는, 네가 혹시 인생의 어떤 순간에 같은 아픔을 겪더라도
너의 상처가 너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또 너로 인해 가족이 망가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어서란다.
때로는 세상이 너를 오해할 수 있어. 때로는 사람이 사람을 상처 줄 때가 있고, 말은 칼처럼 날아온단다.
하지만 그럼에도 너는 혼자가 아니야. 그리고 상처받은 너는 숨고, 회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어.
아빠의 손등에 남은 작은 흉터처럼, 아픔은 남지만 그 흉터마저 너의 일부가 되어 너를 강하게 만든다.
규담아, 아빠는 지금도 때때로 힘들다.
그때처럼 큰 소리로 누군가를 탓하지도 못하고, 말조차 제대로 꺼내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너와 네 엄마를 바라보며—아빠는 오늘 하루를 무사히 삼켰단다.
너희 얼굴을 떠올리면 어쩐지 다시 숨을 고를 힘이 생긴다.
그리고 네가 앞으로 살다 보면,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흔들릴 날들이 있을 거란 걸 아빠는 안다.
그럴 때는 기억해라. ‘다시 한번 생각하라’는 말, 흉터를 품고 가는 일의 의미, 그리고 네 곁에는 내려놓아도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마흔두 번째 편지에서 아빠가 전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가끔은 멈춰 서서 자신을 바라봐도 괜찮고, 숨이 막혀온다면 약하게라도 손을 내밀어 달라.
“다시 한번 생각해라”라는 말은 포기의 명령이 아니라, 네가 이 세상에 남긴 발자국들을 한 번 더 보라는 초대야.
네가 만든 상처, 네가 견뎌온 시간들, 네가 사랑한 얼굴들을 한 번 더 바라보면
아마 숨을 다시 쉴 힘이 생길 테니까.
사랑한다, 규담아.
아빠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함께 걸어가 주는 네게,
흉터도, 멈춤도, 부끄러움도 모두 품어준 채로 전하는 말이다.
봄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