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담아, 마흔세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네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빠 마음엔 기쁨과 함께 걱정이 먼저 자리했단다. 기쁨은 말로 다 못 할 만큼 컸지만, 한쪽 구석에서는 혹시 너도 아빠처럼 세상의 소리를 온전히 듣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조용히 숨을 쉬었어. 난청의 많은 부분이 유전적 원인과 닿아 있다는 이야기를 아빠는 알고 있었기에, 그 불안은 단순한 근심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으로 다가왔단다.
아빠는 오래전부터 자기 귀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담담히 안고 살아왔어. 어린 시절엔 불편하고 서러운 순간이 많았지.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것도 결국 나의 일부가 되었고, 아빠는 그 일부를 안고 세상을 건너는 법을 배웠단다. 그렇다고 해서 네게까지 같은 길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았어. 네가 열여덟 살의 아빠가 겪었던 외로움과 쓸쓸함을 겪는다고 상상하면, 아빠 가슴이 꽉 조여오거든.
그럼에도 규담아, 아빠는 믿는다. 결핍은 때로 다른 감각을 열어 주고, 약점은 곧 다른 사람의 말과 숨결에 더 귀 기울이게 해 준다고. 아빠가 듣지 못하는 소리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더 주의 깊게 입술을 보고 표정을 읽으며 몸을 기울였던 것처럼, 부족함은 더 깊은 이해와 더 세심한 마음을 길러주기도 한다는 걸 몸으로 배웠단다. 네가 만약 세상이 주는 소리를 모두 듣지 못하더라도, 그 때문에 네가 세상에서 덜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야. 오히려 세상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듣는 네 귀는 다른 사람이 흘려버리는 작은 진심의 파편들을 주워 올 수 있는 예민한 도구가 될지도 몰라.
그래서 규담아, 아빠가 결심했단다. 네가 어떤 모습으로 자라든, 어떤 소리를 더 잘 듣고 어떤 소리를 놓치든, 아빠와 엄마의 목소리만큼은 언제나 네 곁에 잔잔히 닿기를 바랐지. 아빠는 너의 하루하루가 단단해지길 바라지만, 동시에 너의 방식대로 부드럽게 살아가기, 너의 결핍이 너를 정의하지 못하게 너의 다름이 너를 작게 만들지 못하게 아빠는 지켜주겠다고 다짐했어.
아빠가 마흔세 살이 된 너에게 진심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하나 더 있어. 아빠가 너를 향한 마음을 지켜온 방식처럼, 규담이도 언젠가 누군가를 만나게 될 때 그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기쁨이 되고 위안이 되는 그런 사랑을 가지면 좋겠구나. 누군가의 존재가 너를 행복하게 해 줄 때, 그건 참으로 귀한 선물이야. 하지만 그 존재에게 모든 것을 기대하거나, 그 사람 한 사람만으로 네 온 세상이 완전히 채워지길 바라지는 않았으면 해.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고, 삶은 늘 여러 겹의 결들로 이루어지니까.
사람을 사랑하되, 그 존재 하나가 네 전부가 되게 하지 말고, 네 안에도 너를 사랑해 줄 다른 이유들을 조금씩 쌓아두렴. 그러면 누군가의 존재가 네게 기쁨을 주는 순간이 더욱 고요하고 단단해질 거다. 너의 삶을 온전히 너의 것으로 지키는 일과, 누군가의 존재로 기뻐하는 일은 서로를 갉아먹지 않는 법이니까.
사랑한다, 규담아.
아빠는 네가 너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듣고, 너만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너 자신과도 나눌 줄 아는 어른으로 자라길 바란다. 아빠는 네 옆에 없더라도 언제까지나 네 곁에서 네 다름을 지키고, 네 기쁨을 기뻐하며, 네 슬픔을 함께 견뎌줄 거야.
사랑한다.
봄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