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게 이름을 붙이며,
규담아,
아빠는 늘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어 — 괜찮다, 해낼 수 있다, 조금 떨리지만 이내 괜찮아질 거라고 — 그 말들이 습관이 되어 어제도 오늘도 입술을 떠나지만, 그 안에도 어쩔 수 없이 조용하고 검은 두려움이 숨어 있다는 걸 너는 알까, 모르겠구나.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발표를 앞두고 숨이 가빠오고 손바닥이 미묘하게 젖어오는 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목소리가 흔들릴 때가 있다는 것을 아빠는 네가 알았으면 해. 아빠는 농업인들 앞에서, 학생들 앞에서 미생물 이야기를 하고 기술을 나누면서도 가끔은 심장이 엄청나게 뛰고, 조금 더 높은 자리의 사람이 들어오면 온몸이 작아지는 것을 느끼거든.
그럴 때 아빠는 숨을 세 번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며, 아주 사소한 의식 하나를 만들어 버텨내곤 했어. 손에 쥔 펜을 가만히 돌려보고, 앞줄에 있는 사람의 눈을 찾아서 그 사람이 하나의 사람이란 걸 확인하고, 말하려는 문장 하나씩을 천천히 내어놓는 것, 그게 곧 작은 용기더구나. 현명하게 헤쳐나가는 방법은 정답이 아니라 습관이고 연습이고, 고요한 준비가 필요한 것이지.
그런데 규담아, 아빠의 두려움이 이제는 다른 모양이 되었단다. 예전의 떨림은 ‘말해야 한다’는 일의 긴장이라면, 지금의 두려움은 다르단다.
—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까 봐, 네가 부를 때 네 이름에 대답하지 못할까 봐, 네가 필요로 하는 밤에 아빠가 거기 없을까 봐 벌어지는 아주 길고 깊은 무력감이야.
군 복무할 때 소방서에서 보았던(진주소방서 2층 복도에 액자가 걸려있단다.) ‘어느 소방관의 기도’와, 순직한 동료 소방관을 위해 전국의 이들이 모금을 하고 서로의 가족을 돕던 광경이 아빠의 가슴 한쪽을 오래도록 울렸지.
「어느 소방관의 기도
스모키 린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화염이 맹렬하여도
어떤 생명이라도 구할 수 있게 하소서
늦기 전에 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떨고 있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가냘픈 외침까지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소명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그러다 당신 뜻에 따라 목숨을 잃게 되면,
은총으로 제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아 주소서」
그때는 ‘직업’이 그 울림의 이유였지만, 지금 아빠가 두려워하는 건 직업의 유무가 아니라, 아빠가 만일 지금 내일 당장이라도 눈을 뜨지 못하게 된다면, 네게 자그마한 버팀목 하나라도 남겨주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란다.
앞으로도 파도는 계속 올 거야, 삶은 잔잔하지 않을 거고, 너와 엄마의 앞에는 또다시 예기치 못한 물결들이 부딪칠 테지, 그럴 때마다 아빠는 스스로에게 묻겠지.
— 나는 어떤 도움을 줬나, 나는 어떤 흔적을 남겼나, 규담이가 서 있을 때 아빠가 너를 밀어줄 수 있었나.
마흔네 살이 된 규담이에게 묻고 싶구나. 나는 좋은 아빠였니?
아빠가 널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몇 자의 글을 적어주는 것 말고는 없구나.
규담아, 네가 마주하게 될 미래의 파도들 앞에서 아빠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 두려움이 몰려올 때는 그것에게 이름을 붙여라, 그리고 그 이름을 가진 두려움에게 네가 가진 무엇으로든 응답하라 숨을 세 번 고르고, 누군가에게 작은 부탁을 하고, 물리적인 기록을 남기고, 사랑을 말하고, 때로는 그냥 울어도 좋다. 아빠는 네가 혼자 있지 않도록, 네가 두려움 앞에서 작아지지 않도록, 네 옆에서 꾸준히 보고 있을 것이다. 네가 지금껏 아빠에게 준 기쁨만큼, 앞으로 아빠가 네게 줄 수 있는 보호와 온기와 작은 실천들을 믿어다오.
사랑한다, 규담아.
두려움 앞에서도 네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목소리를 잃지 않기 위해 매일을 살아가는,
봄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