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04 02:59 일기
언제부턴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당신이 떠오릅니다. 꽃이 피고 지고, 바람이 차가워질 때마다, 나는 여전히 당신 곁에 있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10대의 한복판부터, 20대의 혼란스러움과 30대의 무게까지 함께해 준 나의 친구이자, 첫사랑이자, 그리고 아내인 당신에게 이 글을 씁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고 있든, 나의 마음이 당신에게 닿기를 기도합니다.
얼마 전,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난 후 옥상에 올라섰습니다. 그저 공기가 답답해서였을까요.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 끝에 서 있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무엇을 하려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아래로 몸을 던지려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눈앞에는 내 안검보다 가라앉은 하늘이 있고, 그 아래에는 저 멀리, 생명력으로 가득한 식물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몇 걸음만 앞으로 내딛으면 중력에 의해 바람이 부서지는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때 그곳에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먼 시간의 장소지만 그 순간은 확고한 장소였습니다.
나는 진실된 내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지금 자신이 하려던 일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 있는 자신에 의해 멈추었습니다.
결국 나는 한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발길을 돌려 자신이 관련된 세계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그냥 진실된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절벽을 통해 진실된 내가 있는 곳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런 내가 오늘을 이렇게 맞이할 수 있던 것은 그때 내가 그곳에 있는 진실된 나보다, 내가 밟고 있는 세상을 강하게 의식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요즘 나는 독서를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티보가의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안에서, 당신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그대의 정신상태는 무감각인가 욕정인가 연애감정인가
그 어느 것이든지 내가 보기엔 오히려 세 번째에 가까운 듯 하오
앞의 두 개에 비해 훨씬 그대 다 우니까
요즘의 내 침울함을 용서해 주길 바라오
나는 불완전한 존재임이 분명하오
벗이여 괴로운가?
우리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오
비겁한 짓은 절대 하지 말자
폭풍을 향해 돌진하는 거요
차라리 나아가 죽음을 선택하자
우리의 사랑은 비난과 위험보다 높음을
둘이서 그것을 증명하자
목숨을 걸고 그대의 사람이 되겠소'
당신은 내게 매일을 살아갈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 계절, 또다시 당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