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마흔아홉 번째 봄, 4월 3일

급하게 쓰는 편지지만 네 곁에 오래 머물기를 바라며

by 네로

규담아, 혹시 눈치챘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편지들은 아빠가 급하게 쓰고 있는 편지다.


아빠는 늘 너에게 말로 건네고 싶었고, 직접 눈을 마주 보고 들려주고 싶었단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편지가 아니라, 언젠가 함께 걷는 길 위에서,

너와 나란히 걸으며 조용히 말하려 했던 이야기였어.

그러나 아빠는 이제 안다. 모든 말은 언젠가 전해져야 한다는 것을.

가끔은 먼저 준비해놓지 않으면 전해지지 못하는 말들이 더 많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는 거란다.


아빠는 요즘 아빠가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

평생 게으르다고만 놀림받던 아빠는

가장 열심히 글을 쓰고, 가장 진심으로 사람들을 응원했던 곳이

다음 카페의 암과 싸우는 사람들이라는 곳이었어.


거기에는 다양한 이들이 있었다.

젊은 엄마, 은퇴한 아빠, 막 결혼한 신혼부부, 그리고 그들의 보호자들.

그들 모두는 이름이 아니라 병기로 불리는 사람들이었지.


아빠는 가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암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걸까?’

아니면

‘교통사고일까? 기아일까?’

그러다 알게 됐다.

사람을 죽이는 건 질병이 아니라,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두려움이라는 걸.


규담아,

사람은 누구나 죽는단다.

그건 삶이 갖고 있는 마지막 예의 같은 거다.

죽고 나면 단지 다른 길을 걸을 뿐이야.

살아있다는 건 언젠가 그 길 끝에 닿는다는 뜻이기도 하단다.

지금보다 한참 어렸을 때의 너는 아빠의 빈자리를 보며 말했겠지.


“왜 더 싸우지 않았어요? 왜 더 버티지 않았어요?”


그 질문은 어쩌면 모든 자식이 부모에게 던지는 마음의 질문일 거야.

하지만 기억하렴,

아빠는 싸움을 멈춘 것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 안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선택할 뿐이라는 것을.


어릴 적 아빠는 동화 속 영웅이 되고 싶었단다.

검을 들고 괴물을 쓰러뜨리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이야기 속 사람들 말이야.

그 이야기 속에는 늘 어둠과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아빠는 때로 그 결말이 궁금하지 않을 때가 많았어.


반지의 제왕에 보면 그런 말이 있었단다.


“어떻게 모든 동화가 다 행복하게 끝날 수 있을까?

그 많은 울음과 상실이 있는데, 세상이 어떻게 예전 그대로 돌아갈 수 있겠어.”


그래서 아빠가 붙잡았던 문장은 이것이었단다.


“결국, 이건 지나가는 거예요. 이 그림자도, 이 어둠도.

어둠조차도 지나가고, 새로운 날이 올 거예요.

그리고 해가 비칠 때, 더 밝게 빛날 거예요.”


아빠 또한 그런 문장들을 껴안고 살아왔다.

어릴 때의 너는 그걸 이해하기엔 아직 어려웠겠지만,

지금의 너는 이 말을 이해한다고 믿는단다.


규담아,

여러 이야기 속에 잊히고 스러지는 사람들이 있어.

독립운동가, 농업인, 어업인,

자신의 자리를 지켜가며 살아가는 사람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도,

그들 또한 빛나는 길로 돌아갈 기회가 많았지만,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계속 나아갔단다.


이 세상에는 지킬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이 있고,

그걸 위해 살아간다는 것,

그걸 위해 사람은 때로 목숨을 걸기도 한다는 것.


그래서 아빠는 오늘도 이 편지를 급하게 쓰고 있지만,

이 말만큼은 천천히 네 마음에 닿기를 바란다.


아빠는 지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

아빠는 단지, 살아남는 싸움에서

살아 남길 것들을 남기려 할 뿐이다.


사랑한다, 규담아. 네가 있기 때문에.

발을 지척대며, 남들보다 느린 발걸음이라고 할지라도

아빠는 아직 걷고 있단다.


그리고 어느 계절에 너에게 편지를 남기더라도,

아빠는 네가 태어난 봄과 같은 마음을 담는단다.


봄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