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으로 바람에게 남기는 말
규담아, 벌써 50살이 되었구나 축하해.
아빠는 오늘도 바람을 바라보다가 글을 적는다.
이제는 네게 어떤 말을 남기는 게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남기고 싶구나.
언젠가 이 편지를 읽게 될 너에게,
아빠가 바람처럼 남기고 가는 마음의 조각 하나를 전하고 싶단다.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서,
아빠는 종종 묻는다.
무엇이 나를 이곳까지 데려왔을까.
끝이 있는 걸 알면서도, 왜 여전히 시작을 바라보는 걸까.
사람이란 참 이상한 존재구나.
불가능하고 아득한 길 앞에서도
누군가는 여전히 그 길의 끝에 희미하게 남은 빛을 본단다.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뜻이 아닐까.
아빠도 그랬던 것 같아.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그 끝에는 분명히 아침이 온다는 걸 믿으며 걸었단다.
우연은 인연으로, 인연은 운명으로 이어진다 하지.
지금 네가 겪는 모든 일들이
단지 무의미한 우연처럼 흩어져 보이더라도,
언젠가 그것들은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어
하나의 큰 방향이 되어줄 거야.
그러니 지금의 고통을 너무 빨리 판단하지 말아라.
그것 또한 너를 향해 오던 운명의 조각일지도 모른단다.
노자는 말했다.
“우울한 사람은 과거를 살고,
불안한 사람은 미래를 살며,
평안한 사람은 현재를 산다.”
아빠는 아직 그 경지에 닿지 못했단다.
여전히 과거를 붙잡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괜찮다, 규담아.
평안하지 못한 날들이 계속된다고 해서
평안을 향한 가능성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어쩌면 평안이란 건 완전히 찾아오는 게 아니라,
그 불안 속에서도 잠시 머무는 한순간의 숨결 같은 거겠지.
아빠는 지금 그 잠깐의 숨을 쉬며 이 글을 쓰고 있단다.
화가가 지나친 욕심으로 화폭에 너무 많은 색을 얹으면
결국 검게 물든다고 하지.
마음도 그렇다.
너무 많은 생각, 너무 많은 감정, 너무 많은 후회와 걱정이 뒤섞이면
결국 모든 게 어두워진다.
아빠는 이제 조금 덜어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욕심을 비워내듯, 슬픔도, 불안도, 잠시 내려놓는 법을.
그건 포기가 아니라, 다시 숨 쉬기 위한 준비란다.
마음이 복잡할 땐, 세상의 단순한 것들로 돌아가보렴.
산에 올라 누워 구름을 보고,
바람이 불면 그 바람을 느끼고,
물소리가 들리면 그 흐름을 들어보아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산과 물과 땅이 그러하듯,
너 역시 이 우주의 일부다.
세상에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네가 여기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살아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의미가 되는 일이란다.
아빠는 때로 내 안의 나에게 묻는다.
“지금의 너는 어떤 모습이니.”
그 질문에 여전히 대답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아빠는 그 모호함 속에서도 배우며 살아간다.
세상이 기억하는 위대한 사람들도
결국 하루하루 흔들리며 살아냈던 이들이었어.
그들은 자신이 받아들인 것을 세상에 내어놓았을 뿐이야.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줄 것도 없고,
내 안에 쌓이지 않았다면 나눌 것도 없단다.
그러니 지금의 혼란도, 실패도, 모두 삶을 배우는 과정이라 믿어라.
규담아,
삶은 완벽하지 않단다.
불완전하기에 오히려 아름답다.
너는 흔들려도 괜찮고, 지쳐도 괜찮고, 아파도 괜찮다.
그건 네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다.
아빠를 나타내는 말이 병명이 아니라,
아빠의 이름이 아빠를 증명하듯이,
너 역시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너 자신으로서 존재하기를 바란다.
바람은 사라지지만,
그 속에 담긴 숨결은 사라지지 않는단다.
아빠는 오늘도,
아직 남기지 못한 말들이
세월의 틈새에서 피어나길 바라며
고요히 다음 바람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 바람이,
언젠가 너에게 닿아
너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마음을 건드릴 때 —
그건 아빠가 너를 불러보는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때는 잠시 눈을 감고 속삭여주렴.
봄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