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엄마의 맛

엄마와 나만 알 수 있어 슬픈 맛

요즘 눈에 띄게 맛있는 것도, 먹고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는 내게 당신은 물었다.


혹시 인생 맛집이나 미치도록 좋아하는 음식이 있어?
음... 글쎄. 딱히 생각나는건 없는데.
잠깐 물 뜨러 다녀올게. 그 동안 생각해 봐.


짧은 시간, 나는 생각했다.

스페인 유학시절 먹었던 작은 로컬 바의 모듬 핀초와 가리비 구이? 이탈리아에서 저렴한 끼안띠와 곁들여 먹은 생면 파스타? 인생 맛집이라 함은 이름에 걸맞게 다시 먹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그 장소를 다시 가고 싶어야만 할 것 같은데, 나는 그정도의 맛이라고 생각이 드는 곳이 딱히 없었다.


아니, 생각났다. 게 다섯 마리 정도를 담가 육수를 진하게 낸 뒤 이모가 손수 담근 된장을 풀고 오색 야채와 두부를 넣어 만든 꽃게탕을 내어주는 곳. 아삭한 동치미와 함께 먹으면 일주일 내내 그 국물과 밥을 먹는다고 해도 기꺼이 수저를 들 수 있는 우리 엄마의 꽃게탕. 입맛을 잃어버린 지금조차도 유일하게 침이 고이게 만드는 그 맛. 식당은 대를 이어 운영하게 되면 내 아들과 딸, 그리고 손주들이 찾을 수도 있는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겠지만 이 맛과 감상은 오직 나만 느낄 수 있을텐데. 기껏 길어야 앞으로 40년, 나와 내 가족들만 알 수 있는 그 맛이 마치 시한부처럼 느껴져 슬펐다.


물을 가지고 온 그는 질문을 잊었는지 다시 묻지는 않았다.

나는 마음을 입 밖으로 터트리면 온전히 공감할 수 있는 짧은 슬픔이 하릴없이 흩어져버릴 것 같아 굳이 대답을 붙이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싸움의 철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